1978년 여름...
이제 막 일병에서 상병을 달고 중서부 전선에서 힘겨운(?) 군 생활 하던 나에게
급보가 날아 들었습니다.
작은형님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몇일 째 의식불명이라는 소식.
회사에서 일 마치고 퇴근길에 횡단보도 건너다 질주하는 차량에 변을 당했다는 것.
나보다 다섯살 손위의 작은형님은 그 당시 월남전에까지 참전, 치열한 전투에서
생사의 길을 몇번 넘나든 해병대 하사 출신이었습니다.
서울 기독병원에 입원한 작은형님의 의식불명은 그후로도 4개월여 계속되었습니다.
좀체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작은 형님을 병원의 담당의사나 우리 가족들 그 누구도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의식불명상태에서도 부러진 대퇴부에 알미늄 봉을 박는 등 다시 깨어날 수 있음을 위해
여타 수술도 몇차례 진행되었습니다.
의사의 소견, 1% 정도의 '의식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아주 희미한 희망을 갖고
가족들은 작은형님을 퇴원시키지 않고 동생들의 기도와 함께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가족의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죽은사람처럼 4개월 여 철침대에 누워있던
작은형님의 의식이 어느날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담당의사를 포함한 주위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퇴원한 형님에게 물었더니 병원에서 의식이 희미해져갈 때 하나님께 빌었단다.
이제 앞으로 예수영접 하고 교회도 잘 나갈터이니 살려 달라고...
의식 돌아온지 2개월 만에 퇴원한 작은형님은 새 삶을 교회도 나가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듬해 내가 군에서 제대했을 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작은형님이 새로운 삶을 감사하듯
열심히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내가 군에서 제대한 지 열흘 만에 한탄강으로 견지낚시 가셨던 아버지가
급류에 휩쓸려 돌아가시는 등 집안의 큰 일을 겪으면서 작은형님은 삶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목숨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희망이 없었던 건강은 언제 그랬냐는듯
보통사람과 같은 몸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새 인생은 예수 믿지 않는 형수님과 결혼하면서
형수님의 영향으로 서서히 변질되지기 시작했습니다.
퇴원만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던 형님의 애초의 결심이
불공드리는 형님 처가와 형수님의 영향으로 점점 약해졌던 것.
한창 중동 특수 때였던 당시,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년 근무하기도 하며
작은형님의 새삶은 계속되었지만 믿음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형님이 퇴원 후 꼭 10년이 되던 해였던,
우리나라 전체가 올림픽의 단 꿈에서 젖어 있었던 1988년 여름...
잠자리에 막 들었던 밤 12시 정각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댔습니다.
순간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
불안한 마음으로 받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막내동생의 다급한 목소리.
'작은형님이 퇴근 후 귀가길에 바로 형님집 앞을 가로지르는 사가정길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속도위반으로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어 청량리 위생병원 응급실에 막 입원했다'는
막내의 숨 넘어가는 소리였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 보니 응급실에 누워있는 형님은 입에 거품만 뽀골뽀골 물고 있을 뿐,
의식불명상태였습니다.
서둘러 원무과에 보호자 등록을 한 후 응급실로 다시 왔을 때,
그 사이 형님이 실려간 중환자실의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30여분 후 굳게 잠겼던던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면서 담당의사가 보호자인
큰형님과 나를 불러 흉곽압박 호흡을 몇차례 시도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의 맥박과 심장박동 계기판의 길게 한일자 로 그려지는 싸인이
형님의 사망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기록한 형님의 사망시각은 새벽 두시.
형님이 교통사고로 기독병원에 입원한 지 꼭 1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1978년 교통사고로 입원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교통사고로 재입원...
이 두 사건은 사고장소가 달라 입원한 병원만 다를 뿐 모든 상황이
10년 전과 어쩌면 그리 꼭 같은지...
형님은 소생한지 꼭 10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10년 전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이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던 형님의 굳은 믿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형님을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10년동안
형님은 그 약속과 다시 얻은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형님의 생명을 다시 거두셨습니다.
10년 동안의 생명을 유예하셨던 하나님이...
green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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