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낚시 이야기

L대리와 통한의 예당지와

green green 2003. 2. 20. 09:40
회원중의 한 분인 J부장의 고향이었던 예당지는 직장낚시회 시절, 많이 찾았던 저수지의 하나로 꼽힌다.
처음 가보았던 1986년 봄, 예당지를 처음 대하는 나의 소감은 파도가 일렁이는 예당지가 흡사 남해의
어느 바다를 연상시켰을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그 때는 좌대도 없었으니 연안에서 낚시를 하곤 했는데 당시에 붙여진 "낚시꾼 신병훈련소"란 별명이
어울리지 않게 그렇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해 초여름 예당지에서의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6월인가? 어느 토요일 오후, 회사가 끝나자마자 골수꾼 네명이 모였다.
그 당시로선 귀한(?) 흰색 스텔라 승용차를 갖고 있는 L대리가 우리 낚시회 회원이어서 우리는 자주
그 차를 이용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 일행은 노상 싱글벙글하며 낚시얘기와 그 무용담을 주고 받으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낚시꾼들은 뻥이 세다고 했던가? 차주이자 운전자 L대리의 뻥.
"내가 있쟎아요? 작년 여름에 모 저수지를 찾았는데 글쎄..."
꾼들은 누구나 낚시얘기만 나오면 눈이 휘둥그래지고 귀가 쫑긋거린다.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 운전석으로 8개의 눈(나는 안경을 끼므로...)과 6개의 귀가 모여졌다.
L대리는 더욱 흥이나서 그 당시의 상황을 얘기하는데.
"3칸대의 찌가 푹 하고 가라 앉더라구요..."
"그래서 홱하고 나꿔 챘더니 뭔가 묵직한게 걸려 꼼짝도 안하는 거 아닙니까?"
이정도 되면 듣던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오잉? 그래서?"
주변의 높은 관심도(?)를 감지한 L대리는 더욱 흥이 났다.
"그래서 이차저차해서 간신히 대를 세웠는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핑~ 하고 떨어져 나가는데, 나중에 보니 바늘이 부러졌더라구요, 그런데 얼굴은 봤어요! 잉어,
그 미끈한 알몸이 어찌나 큰지..."
"그래 얼만하던가?"
하고 묻는 J부장의 질문에 L대리는 보기는 두 손을 핸들에서 뗀 채 왼손을 오른팔의 팔꿈치 위
알통부분을 감싸 만지며 "한~ 이따만 했습니다, 어휴 아까와라."
바로 이때 차 안의 우리는 십년감수, 왜냐고?

그 당시 승용차와 자가운전자가 많지 않았던 시절,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핸들을 갑자기 놓는 운전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 순간 차안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할 수 밖에...
간이 콩알 만해진 J부장이 한 마디.
"어이, L대리! 사람 잡을 일 있어? 그 놓친 잉어도 큰지 아니까 제발 그 손은 운전대에서 떼지 말고
얘기하란 말이야."
ㅋㅋㅋ 말이야 맞는 얘기네, 운전중에 두 손을 놓고 운전을 해?
나는 L대리의 뻥이 어느정도인가 시험해 보고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L대리, 그 잉어가 크기가 어떻다고?"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L대리는 또 핸들에서 두 손을 뗀채
"이만했다니까요?"하며 이번엔 팔꿈치 부분으로 슬쩍 내리는 것 아닌가?
순간 또 차 안은 공포의 도가니...
낚시꾼들은 자기가 얘기했던 뻥을 재차 물어보면 조금 위축하는 경향이 있다.
L대리도 그새 그의 뻥이 좀 줄었다.
되묻는 내 질문에 움찔하면서 자기가 놓친 고기의 싸이즈를 한 10센티는 줄였던 것.
나의 경험을 뻥치는 다른 조사들께 시험해 보시라.

밤새도록 예당지에서 재미를 못본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대를 접게 되었다.
무너미 밑에서 하번 대를 펴 보고 올라가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느 저수지이고 무너미 밑에는 많은 어자원과 큰 물고기가 있으므로 저수지에 들어가지 않고 무너미밑만 찾는 꾼들이 많다.
우리는 승용차로 무너미밑으로 이동하여 차를 대기 편한 좋은자리(?)를 택해 대를 펴고 낚시에 들어갔다.
대를 편 지 한 30여분 되었을까?
약간 있었던 물흐름이 시간이 갈수록 흙탕물과 함께 하류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수문 쪽을 바라보니
아뿔싸! 관리소에서 예고도 없이 수문 하나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아니 우리가 예고를 못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5분대기조의 출동처럼 빨리 대를 걷었으나 매정한 예당지의 흙탕물은 이미 뒷켠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의 타이어 높이의 절반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상기된 L대리가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아도
이미 차의 내부까지 물에 잠기기 시작한 승용차는 꿈쩍을 않는다.
마후라에 물이 들어가면 이차로 서울에 올라가는 것은 포기해야 하므로 운전석에 앉은 L대리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승용차에 달라붙어 차체를 밀었다.
물은 계속 차 올라 승용차 내부의 시트까지 잠겨 가건만 시동이 걸린 승용차는 꼼짝을 못하는 것이었다.

J부장은 다급한 김에 이렇게 우리들에게 얘기하였다.
"이럴게 아니라 차라리 예산시내에 있는 내 친구에게 연락하여 랙커차를 보내 달라고 할까?"
그러나 이 차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이 차를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예요, 하는데 까지 한번 해 봐야죠, 우리가 이차를 못타는 한이 있어도..."
하고 내가 대답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얻어가면서 차체를 들어내고 밀기를 여러 번, 드디어 차체를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물밖으로 나온 차와 우리는 한마디로 그 모습이 처량했다.
시트와 바닥이 물에 잠겨 시트카바와 방석, 발판을 꺼내어 물을 짜내고 말려야만 했다.
갑자기 일을 당해 기운이 쪽 빠진 우리들은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다.
라면을 끓여먹고 곧 기운을 차린 우리는 서울로 돌아 가기로 했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문 밑을 지나던 우리는 수문 밑에 차를 대 놓고 물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그 와중에 차주 L대리는 횡재를 하는 일이 있었으니...
수문 위에서 물과 함께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한 50센테나 되는 띨띨한 가물치를 포획한 것,
누가 먼저 발견했더라도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인 무림세계(?)의 불문률....
L대리는 가물치를 잡았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고생 끝에 잡았으니 낚시로 잡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집에가서 낚시로 잡았다고 자랑할 것이라며 우리를 또 한번 웃겼다.
나중에 L대리의 집에 가 보니 문제의 그 가물치는 욕조속에서 혼자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는데 며칠 후
끓는 솥에 들어 가 어머니의 보약으로 쓰였다는 후문.
그리고 정말이지, 물 한번 먹은 차의 냄새는 정말 못 맡을 정도였는데 그 해프닝 이후 L대리 차를
올라탈 때마다 냄새가 우리의 코를 찔렀다.
그차의 냄새가 없어지기까지는 무려 6개월이상 걸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