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월급 228만원으로 사나 못사나?
9년 전의 일,
퇴근 때쯤이면 배가 고프게 마련이고 웬만한 남자들은 배가 고플 때
이슬이생각 나는 것은 그 때의 비단 나에게만 해단되는 일이었을까?
가을이 물러가던 그해 11월 어느 저녁, 퇴근 후 귀가길에 집 근처의 선술집엘 찾았다.
저녁 퇴근 때 가끔 애용하는 집으로 홍어회의 맛이 일품인 술집 겸, 식당이다.
"홍탁 주셔요!"우렁찬 내 목소리에 친절한 그 집의 아주머니가 큰 대접에 좁쌀동동주와 안주로
비단 국산은 아니지만 칠레산 수입 가오리로 만든 홍어회를 접시에 너댓점 담아 내어 준다.
시장끼 도는 그 시간에 마시는 찹쌀동동주와 수입산일망정 그 홍어회의 맛!개그맨의 너스레가 아니다.
'먹어 보셨어요? 안 먹어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다른 길로 퇴근 중이었다면 모를까,하필 그 집 앞을 지나치던 중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랴?
자동으로 그 집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 버릇처럼 곁에 놓여있는 신문을 집어들고
이곳저곳 기사를 훑는데 이 신문(ㄷ일보 2000년 11월 1일, 정확히도 기록했네!)의
19면에 "월급 228만원으로 사나? 못사나?"라는 좀 낯선 제목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 해결사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읽어 보았다.
내용은 13년 경력의 어느 남자 교사의 부인이
그해 10월 21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의 낸용을 기사화 한 내용이었다.
그 부인은 이 글에서 "남편의 이달 월급은 228만 8400원으로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공과금, 세금 등을 빼고 나면 생활비가 남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며
봉급의 지출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고.
그 후 이 부인은 남편에게 "주부파산" 통고를 했고 그 여지의 남편은 그 일로 인해스트레스 받아 병까지 얻었다고 기사는 덧 붙였다.
만 9년 전의 월급 228만원이면 적은 액수도 아니었을텐데왜 그 주부는 그 봉급으로 한달을 살 수 없는걸까?
당시의 그 수입은 보통 샐러리맨에 비해 높은 부장급 이상의 월급 액수로 적지 않은 수입인데...
이 사회에는 그 가정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더군다나 요즘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월 급여가 80만원이 크게 넘지 않는수준이고 보면 9년 전의 그 월급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각자가 빈곤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내가 못사는 것 같은 상대적 빈곤에 길들여 있다.
옛부터, 사촌이 혹은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라 그런지 우리의 눈과 귀는
항상 밖을 향해 열려있으며 모든 판단의 잣대 역시 남을 향해 있다.
이러한 습관이 만연되어 언제부터인가 웬만한 사람들에게 요즘 어떠냐? 고 물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형편이 어렵다고 얘기한다.
남보다 나아 지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어쩌면 그것은 낚시를 즐기는 사람에 비유할 때 전보다 더 큰 고기를 낚고 싶은 심리와 같다.
자신의 기록을 시간 다투어 경신해야 하는 운동선수들의 마음 같은...
그 부인은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어도 되었을성 싶다.조심스러운 것이 그 집의 가계부를 뒤져 보지 않았으니 말하기 쉽지는 않지만
만일 그 부인이 그렇게 생활 할 수 있었다면 적지 않은 남편의 수입에 맞추어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 했는데도 어려웠다면 아예 맞벌이로 나서던지 해야 하지 않았을까?궁금하다, 9년 전 228만원의 작은 봉급으로 도저히 살기 어렵다며
청와대에 탄원서 낸 그 부인... 그 후 무엇을 얻었으며
지금은 어떻게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