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사(音樂萬思)/연주 & 관람 후기

오페라 나비부인 관람 후기,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009.10. 8...

green green 2009. 10. 13. 08:28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오페라 관람은 재작년 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베르디의 아이다 관람 이후 이번 10월 8일 대전 예당에서의 국립오페라단과 대전오페라단이 공연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두번 째이니 기대가 컸다.
대전예당 아트홀의 객석 수는 1500여석,
자리에 앉은 채 앞뒤를 둘러보니 빈자리는 별반 보이지 않고 거의 채워져 있었다.

 

나비부인의 배경은 1900년대 초기의 근세 일본으로 서양군인 장교와 일본 게이샤의 사랑이야기...
이 정도로 단순히 알았던 나비부인의 분위기와 내용을 이번 관람으로 제대로 느꼈다.
왜 진작 줄거리와 분위기라도 몰랐을까 후회했지만 지금이라도 감상할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나비부인의 음악은 알고 내용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조금 길지만 줄거리와 분위기를 소개한다.
(내용을 아시는 분은 건너 뛰시길...)

 

제 1.2 바이올린의 합주에 의한 서곡이 울리면서 막이 오르면...
나카사키에 주둔한 미국 군함 A.링컨호의 해군 장교 핑커톤 중위(민경환)와 중매쟁이 고로(장경환)가
넓은 정원이 딸린 신혼집에서 집과 신부 나비부인(소프라노 조정순 역)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이때 핑커톤의 친구 미국영사 샤플레스(테너 송기창 역)가 등장, 한때 충동에 이끌려 결혼하지 말 것을
권면하나 핑커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나비부인을 오직 현지처로만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 한다.
 
두 사람의 대화 중에 한 무리가 무대를 채우면서 나비부인과 핑커톤 중위의 계약결혼이 시작되는데
결혼식이 끝날 무렵, 승려인 나비부인의  삼촌 본조가 결혼을 훼방하면서 식장은 난장판이 된다.
나비부인, 쵸쵸상이 미국인인 핑커톤 중위와의 안정된 결혼생활을 위해 일본 전통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참고로 현재 일본은 아직도 기독교 인구가 5% 미만이다.

무리를 쫓아낸 핑커톤은 그날밤, 둘만의 꿈같은 첫날밤을 지낸다.


그후 핑거톤은 일본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파국의 결혼식이 예고했듯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핑커톤 떠난 후 아들을 낳은 나비부인은 매일 망원경으로 나카사키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일일이 살피며
그가 꼭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극 중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갠날'은 이때 나비부인이 부른 노래,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이번 나비부인역 조정순님이 우리 가슴이 저며지도록 표현했다. 기다림의 애련함과 꼭 돌아오리라는 확신...    
그 사이 핑커톤의 친구 샤플레스 영사가 나비부인을 만나지 않겠다는 핑커톤의 편지를 들고 등장한다.
그러나 편지를 반기는 나비부인과 그들의 아들 노랑머리에 푸른 눈의 아들을 보자 사실대로 전하지 못한다.
어느날 항구에 A.링컨호가 입항하자 나비부인은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곱게 단장하며 핑커톤을 기다린다.

 

미국에서 결혼한 부인 게이트와 함께 핑커톤이 집안에 들어오자 하 스즈키부인은 그간 사정을 호소,
뒤늦게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핑커톤은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 밖으로 나간다.
이어 나비부인이 등장,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게이트 부인에게 30분 후 핑커톤이 직접 오면
그때 아이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무대에는 나비부인만 남은 채 모두 퇴장, 회전무대가 180도 돌면서
나비부인은 과거 아버지께 물려받은 단검에 새겨진 "명예롭게 살 수 없을 때는 명예롭게 죽어라
(Con onor muore chinon puo serb ar vita con onore)" 문구를 읽고 자결한다.
이때 핑커톤이 등장, "나비, 나비, 나비" 나비부인을 부르며 들어오면서 막이 내린다.

 

이미 줄거리나 분위기는 관객들이 파악했을 터, 대사의 전달을 보다 더 집중케 하기 위해 무대장식은
될 수 있는대로 동양화 특유의 '여백의 미'를 간결하게 표현, 나머지는 관객의 몫으로 배려한듯 했다.
3막이라고 하지만 세개가 아닌 두 개의 무대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오는 무대의 단순함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주인공 심정적인 변화와 그 감정 전달의극대화를 위해 사용한듯한 180도 회전무대가 압권이었다.

 

커다란 와이드스크린 같은 배경은 일본 적인 컨셉을 비쥬얼적으로 단순하면서 강렬하게 보여 주었다.
다른 연극이나 오페라 등에서 간혹 어쭙지않은 컨셉 불분명의 의상디자인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번 의상디자인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은 물론 엑스트라 배역의 어느 의상도 튀지않았고 허접하지 않았다.
또 소품은 어떤가? 이것 역시 잡다하게 많이 쓰지 않고 일본적인 것을 보다 단순히 전하려 애썼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듯 오페라 역시 종합예술이다. 오페라도 대본이 필요하다.
나비부인의 대본은 마농레스코, 라보엠, 토스카 등으로 푸치니에게 절대 신임을 받던

당시의 대본가 G.자코사와 L.일리카가 썼다고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이 두 대본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100여년 전인 그 당시 이 두 작가는 오만하고 비겁한
도망자 해군 중위 핑커톤을 통해 이미 미국의 패권주의를 예견, 경고하였다는 점이다.

 

푸치니는 제1막 핑커톤의 아리아 '세상의 어디라도'에서 미국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 도입부분을 차용,
"...미국인은 세계 어디에 가거나 활보하고 어느 나라에 있든지간에 아름다운 꽃을 손아귀에 넣고야 말죠..." 라는
내용의 가사로써 오늘날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표현하였다.  
당시 미국이라는 100년 밖에 안된 신흥국가의 팽창하는 국력을 예견했던 작가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서양 여인이 주연인 나비부인의 이미지 컷을 몇장 보아 왔지만 정서가 정서이니만큼 대체 어울리지 않는다.
나비부인은 투란돗트와 함께 푸치니의 동양을 대표하는 오페라인 만큼 동양적인 외모와 목소리가 요구된다.
'가장 한국적인 정감의 목소리'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소프라노 조정순 님이야 말로 이번 공연의 적임자였다.
3막까지 전개되는 동안 조정순님의 연주는 1막의 초기부분보다 더욱 안정되었으며 포스가 전해졌다.

 

뿐이랴? 조정순님의 출생지가 대전인만큼 무대에서 대전문화예당에서 뿜어내는 기량만큼 관중의 환호도 대단했다.

 앞으로 소프라노 조정순 님의 나비부인에서의 아리아 어떤 갠날이 대전을 넘어 서울 예당 아니,
세계 4대 오페라 하우스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뉴욕 메트로폴 리탄 오페라 극장,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등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꿈은 이루어진다. 나비부인이 부른 어떤 갠날의 후반부 노랫말 처럼...  

 

"...이런 날이 곧 올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마
그는 돌아 올거니까
난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