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좋은 개살구...
아직 1월이 오기도 전에 영하의 기온이 계속된지 일주일여,
그래서인가? 풍성한 과일이 눈에 아른거린다.
4계절 뚜렷한 우리나라, 각양각색의 과일이 계절 따라 출시된다.
요즘은 온실재배로 인해 사시사철 온갖 과일구경을 할 수 있지만
과일은 그래도 제철과일, 청량감 느끼며 먹는 계절과일이 최고다.
과일이든 수입과일이든 야채이든
요즘의 것들은 달지 않고 도통 제맛, 옛맛이 나지 않는다.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공통적인 소감이다.
수십년간 빨리 변한 식생활 습관 등 문화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부단히 이루어진 품종개량도
무시 못할 이유라면 이유일지 모른다.
해질 무렵 퇴근길, 시장골목이나 수퍼에 들러 과일들을 산 경험이 많다.
그런데 남편들이 밖에서 무언가 사들고 귀가 했을 때 남편의 쇼핑능력에 대한
아내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낙제점이다.
나의 경우 역시 아내는 항상 낙제점 주기를 서슴치 않는다.
비싸게 바가지 섰다느니, 한물 간 것 사 왔다느니, 필요 없는 것 사 왔다느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좀 아내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떠랴?
이렇게 아내들은 남편의 정성을 아예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왕왕 많다.
존재감의 표시인가?
아니면 쇼핑만큼은 자기가 전문이니 그런줄 알라는 일종의 시위인가?
다시 과일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의 애기인 지난 여름의 경우(천도 복숭아 쇼핑사건이라 할까?)는
남편들의 쇼핑 무조건적인 흠집내기와는
전혀 그 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 여름동안 퇴근길에 산 과일만도 꽤 되는데
특히 몇년 전 천도를 두번 샀으나 두번 모두 완전 실패...
그때에도 달지않은 천도를 한번 베어 벅어 본 아내는 잘못 사왔다고 잔소리를 한다.
처음엔 내가 쇼핑해 온 물건을 보고 의례히(?) 하는
아내의 잔소리려니 했으나 웬걸?
아이들마저 맛 없다고 천도를 먹지 않는다.
그 이후 천도를 또 한 번 산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
한번 베어먹더니 전번보다 더 맛이 없다며 한 마디 한다.
"무슨 과일이 이렇게 맛이 없느냐"며...
결국 아이들까지 합세,
식구들 아무도 먹지 않아 내가 몇일동안 벅어 치웠다.
천도의 원래 맛이 그런 것인가?
천도(天桃), 이름하여 하늘의 복숭아?
천도의 맛이 옛날에도 이랬을까?
그후 우리 식구들은 천도를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앞으로 내가 나열하는 과일 이름에서
"천도"란 두 글자의 이름을 빼 버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맛 없으면 누군가 그 이름을 하늘복숭아라고 지었을까?
시거든 떫지나 말아야지,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름이라도 그렇게 지었나 보다.
두 번 째 천도소둥이 있던 이튿날
신문에 나온 기사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 해(2003년)는 일조량이 예년에 비해 70%밖에 되지 않는단다.
그래서 과일들이 제대로 익지 않아 수확량도 적지만 그 맛이 또한 달지 않단다.
그랬던가? 어쩐지...
돌이켜 보니 천도 뿐 아니라 올 여름 과일들이 하나같이 별로 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신문기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해두번 째 천도를 샀던 주간, 8월 20일은 주초부터 비 내리더니
그날까지 비를 뿌려댔다. 장마철도 지났으련만...
정말 그 해 여름은 햇빛 본 날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이
당시 한달 후 추석 때 그나마 달던 달지 않던 과일값이 일조량
절대부족에서 오는 수확량 감소로 인해 30%이상 올랐다.
그해 추석 차례상에는
맛 없고 달지 않은 과일들이 올라간 것이다.
조상들도 이해하셨을까?
빛 좋은 개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