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멈춘 달력...
봄이라지만 흐린 날씨와 찔끔 내리는 비 영향으로 아직 쌀쌀한 날씨의 연속이다.
낮에 내리던 비가 어제 오후엔 그쳐 다행이 우산없이 출근했던 퇴근 길을 용이했다.
엊저녁과 같은 늘상 반복되는 퇴근 후의 일과는 아들이나 딸의 방에 들어가 그들의 PC를 이용,
우리 카페에 들어오는 등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이 저녁 식사 전후에 빼놓을 수 없는 순서.
어제도 오랫동안 비어 온기 잃은 딸의 방 책상 위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무심결에 옆 벽면에 걸린 캘린더에 눈이 갔다.
그런데 지금 4월 하순이지만 주인 잃은 딸의 캘린더는 1월과 2월에 정지되어 있다.
이사간 집 빈방에 홀로 남아있는 캘린더는 언제 이사했는지 알수있다.
딸의 캘린더에는 지난 겨울 딸의 학사일정과 범상챦은 스케줄이 꼼꼼히 메모되어 있었다.
1월2일~8일 OO대 원서접수, 1월13일 서류제출, 1월14일~27일OO신청, 1월18일 인문강좌 신청,
1월25일 휴학계, 1월31일 면접, 2월3일 발표, 2월9일 등록, 2월11일 기숙사, 2월18일 정은언니 졸업,
2월 27일 수강신청... 아이의 캘린더에 학사일정과 스케쥴은 2월 27일에 끝이 나 있었다.
인터넷 서핑한 김에 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았다.
홈피에는 위 스케줄 동안 있었던 일 등이 간단히, 그러나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경주에 내려가 있었던 일을 적은 페이지에서 눈길을 다른데로 돌릴 수 없었다.
1월 31일,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3학년 편입 면접시험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빈방에 덩그머니 걸린 캘린더와 싸이월드 홈피에 올려진 딸의 글을 읽고 나니
지난 겨울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나중 이야기이지만 딸은 그날의 면접시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질문하던 교수님 입가에 웃음에서 내가 시험 잘 보고 있다는 확신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더욱 경쾌한 면접이 될수 있었어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딸이나 부모된 우리 부부나 큰 부담은 갖지 않았다.
지금 다니던 학교는 휴학계 내고 일년동안 준비 및 공부하여 올해 아닌 내년에
편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되 올해는 사실 경험을 위해 편입고사를 치루었던 것.
시험이 끝난 후 딸은 그날부터 닷새 여정으로 포항, 울산, 부산, 대전 등
편입고사 차 경주 내려갈 때 미리 세웠던 여행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고분군 등 시내 자체가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적지가 많은
경주 시내를 관광하는데만 이틀이 걸렸다는 딸의 이야기.
여행 중, 부산에서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전임 청년 담당 목사님 가족도
우연히 만나는 등 나름대로 알찬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여행 사흘 째 되던 날, 부산에서 핸드폰으로 합격 통지를 받은 딸은 그 길로 내게 전화했다.
"아빠, 저 학교에서 연락 왔어요, 합격 통지..." 딸은 흐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런 일이...
입학시험보다 더 어렵다는 편입시험에 네가 합격을 했구나! 축하한다."
"네, 고맙습니다. 합격은 했지만 제 여행은 계획대로 하고 금요일에 서울 올라갈께요."
"그래, 올 때 대전에 꼭 들러 네 작은 아버지 꼭 만나고 오너라."
딸은 금요일 오후, 대전에서 작은 아버지를 만나 마침 그날
미국에서 귀국하는 딸의 둘째 고모이자 나의 작은 누나를 마중하러 인천공항에도 함께 갔다.
그날 저녁 딸은 여행으로 몸이 피곤하여 둘째고모 숙소인 안양 큰 고모댁에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 떠난지 딱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 온 것이다.
그 후 2월 27일 낮, 딸과 나는 승용차에 학교생활에 꼭 필요한 짐과 몸을 싣고
아내의 운전으로 중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경주를 향했다.
저녁 늦게 경주에 도착, 그날 밤 저녁식사 후 찜질방에서 유숙했으며 이튿날 자취방을
구했으며 대형마트에서 식품과 공산품, 집기 등 생필품을 쇼핑했다.
부족한 것은 채웠고 없는 것은 구입했다.
학교 바로 옆이므로 자전거 통학하라고 자전거도 한 대 사 주었다.
짐과 새로 구입한 짐, 모든 짐 정리를 끝내고 가져간 전기밥솥 시험도 하고,
보일러 시험가동도 할 겸 가져간 저녁식사는 자취방에서 했다.
서울로 돌아오던 3월 1일 오후,
가족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듯 경주 시내에는 비가 내렸다.
어린 딸 천리타향에 두고 떠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PS.
그 후 김길태 사건이 전국을 뒤흔드는 가운데 우리 부부는 노심초사,
마음고생하는 일이 있었으니, 이 곳에 글로 다 표현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