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때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문학과 학문 사이에서...

green green 2010. 8. 6. 11:54

 

각 사람(작가)들의 상상력에 따라

언어적으로 표현될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을 '문학'이라고 정의한다면

그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학문'이다.

문학은 창조작업이며 자기 개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자기 개성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자기 개성(흙)을 체에 걸러 고운 가루를 골라 반죽하여

우물주물 형체(그릇 등)를 만든 후 불가마 속에서 형체가 견뎌내기 어려울만큼 

높은 열로 구워내는 초벌구이 과정을 거치는 '도자공예(미술)와도 같다.

 

꺼진 불가마 속에서 식어진 초벌구이된 것을 꺼내어 유약 등을 칠해

또 한번 더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굽는 등 여러 공정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

도자기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망치로 으깨어 버려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차단한다.

온전치 못한 것을 창조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에서이다. 

 

또 작곡가의 머리에 떠오르는 찰나적인 아이디어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도는 악상을 오선지에 옮겨 갈고 닦는 작업을 하는
음악에서의 '작곡' 장르도 같은 창조 작업이다.
학문을 추구함에 있어 그 끝이 없듯이 창조를 목표로 하는 문학, 음악, 미술 등의
활동 또한 그 끝이 없다. 다만 완성을 향하여 정진할 뿐..

 

문학을 거꾸로 읽으면 학문으로 읽힌다.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창조작업이 그렇지만 표현함으로써 창조하는 작업이기에
새로운 표현을 위해 늘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문학을 거꾸로 읽으면 학문이 되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닌가 보다.
작가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시대가 지금이다.

 

공든탑 무너지랴?
학교에서 배우든, 사사를 하든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창조활동은 학문이 기반이 된다.
남을 가르치려 해도 학문해야 하는 이치, 그런데 배움은 겸손이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선인의 말씀도 여기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는 정보화시대,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이다.

 

문학과 학문은 완성이 없다.
또 문학과 학문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가장 초보적인 학문(배움)은 남의 말이나 의견에 귀 기울이며 경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나 의견에서 내가 취할 것과 연구할 것을 가려 취한 것은 내것으로 만들며
연구할 것은 더 찾아 더 배우는 것이 학문이다.   

 

세상이 다 스승이다 하는 겸손한 마음 없으면 배울 수 없다.
배움이 없으면 창조할 수 없는바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 배움이다.
배우며 하는 창조작업일수록  반석위의 건축물 지은 것처럼 튼튼한 결과를 초래한다.
세상 속에서 좀 더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 곧 배움이다.
남의 말이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생활 속의 배움이며 학문의 시작이다.

 

나는 문학의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잡문을 쓰는 작가 아닌 작가이다.

생활의 현장에서, 책에서, 인터넷에서 또 여러 경로를 통해 경험하고 배우고 익히며

그것들에서 깨달은 것을 글로 표현한다.

나의 이 작업은 문학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지만 이 작업으로 인해 기쁘다. 

때로 배우고 익힌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