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노랑머리 소녀, 메리의 추억...

green green 2011. 3. 22. 10:49

 

6.25 전쟁 끝난지 10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산 곳은 동대문구 전농동이었다.
우리 동네 두어채 남아있던 초가집 중 한 채, 담 없는 전형적 서민 가옥의

그 집 문앞에 이르는 길 양 옆의 마당은 텃밭이었다.
 

놀랍게도 그 집에는 머리 하얀 할머니와 노랑머리 여자애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메리',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으로
그외에 '순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흔히들 '아이노꼬', '틔기'라고도 불렀는데

혼혈이긴 했으나 외관상으로 보기에 전형적인 서양 아이였다.


행색은 늘상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차림이다 시피했으며 검정 고무신을 신고
성격은 쾌활한 편이었으나 우리들처럼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데리러 오기 때문이라 했으나
글쎄, 몇년 지나도록 아버지는 오지 않았고 할머니는 점점 노쇠하여 갔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어른들 얘기로는 외할머니일 것이라고 했다.
정확히 메리와 어떤 사이인지들 모르는 할머니는 메리를 끔찍이 위했다.
어른들 탓에 메리와 놀기를 꺼려하는 아이들이 '아이노꼬'라 놀리거나
짖굳게 굴면 어떻게 알고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을 냅다 쫓아내셨다.


메리는 우리와 똑같이 어설프지 않게 우리말을 잘 했다.
태어난 곳이 우리나라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니 당연했다.
같이 놀아주는 아이들이 많지 않으므로 초가집앞 텃밭과 놀이터 삼아
소꼽장난을 하며 대부분 시간을 혼자 노는 것이 목격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텃밭에서 놀던 메리가 보이지 않아 어른들께 물었더니
우리가 학교 간 사이 미군이 와서 데려갔다고 했다. 정말 미국에 간 것이다.
아쉬웠다. 메리가 동네를 떠난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온다던
키 크고 파란 눈의 멋진 미군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것이다.


메리를 보낸 후 혼자된 할머니는 기다렸다는듯 급속도로 허약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간혹 돌보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을 써 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아이 때문에 버티고 있었는데 아이가 떠나자 할 일 다 끝낸 것처럼
노환인지 병인지 모를 사유로 시름시름 앓더니 이듬해 사망했다.


주인 잃은 초가집은 얼마 못가 무너졌고 텃밭은 동네의 공터가 되어 
결국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우리집이 그 동네에서 곁동네로 이사하던 해까지 무너진 채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45년 지난 지금,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메리를 생각해 본다.
당시 미국에 간 메리가 잘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아직도 있다.
그 아이가 미국에서 친엄마를 만났을지 아니면 의붓엄마를 만났을지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동네 어른들도 메리의 정보에는 어두웠다.


아버지 따라 미국에 갔다고는 하나 영어를 전혀 모르니 우선 급한 것이
영어 배우기였으므로 학교생활 등이 쉽지 않을 것었다.
당시의 내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나라 미국에서 잘 성장하고 살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되었기를 바라는 미련은 아직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