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낭패, 때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

green green 2011. 4. 9. 08:36

9년 전, 오늘처럼 희뿌연 황사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했던 

2002년 4월 8일 밤 9시... 
막 늦은 저녁밥을 먹으려 하는데 핸드폰이 급하게 울린다. 전화를 받고 보니 
이틀 전, 4월5일 쯤 만나서 무언가 얘기좀 나누자던 옛직장선배였다.

 

그로부터 이틀간 전화가 없어 약속이 없을 줄 알고 퇴근했는데...
저녁식사 직전이라는 나의 설명에도 핸드폰 통해 들리는 그 선배의 횡포 가까운 
애원(?)에 졸지에 분당으로 야밤의 호출을 당했다. 
정작 분당 수내동에서 선배를 만나니 밥부터 먹지 않고 곧 개업하루 PC방의

35벌 의자와 데스크, 각종 기물의 정리정돈을 맡겼다.

 

마음 같아선 밥먹고 하자고 선배에게 한마디 던지고 싶었으나 선배는 
부부가 같이 나와 움직이니 그저 꽉 붙잡혀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밤11시 30분... 
금강산도 식후경, 귀가고 뭐고 배 고프니 식당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분당의 수내동은 주택가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단지여서 상가가 멀다.
그러니 근처에 아직 문 열고 우리를 기다리는 밥집은 없을 수 밖에.. 
30여분 찾아헤매는 동안 간신히 허기진 우리의 눈에 띈 집은 순대집. 
순대와 순대국과 소주로 저녁도 못먹은 그야말로 허기진 순대를 채웠다.

 

새벽 1시경...막차인지 뭔지 모를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달 밤에 체조한 격이었다.
이틑날부터 외부 간판과 벽면에 붙일 대형그림 등 각종 디자인 및 제작,
설치등을 내 경비 들여 도왔으며 이에 선배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당시 선배는 IMF 여파로 기존의 업종을 폐업, 한 1년여 쉬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이기에 여간 조심스럽게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먼저 하던 일을 폐업하고 한 1년 반 쉬다가 다시 일 시작하는 처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내 경비와 시간 들여가며 선배를 지원했다.

 

선배는 PC방 오픈 전단지 제작도 부탁한 처지였으나 디자인과 용역비는 
고사하고 실경비라도 주겠다는 약속이 없었으므로 쾌히 승락하지 못했다.
당시 나 자신도 새로 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이상의 내 경비
들여가며 선배의 사업을 도울 수 없는 처지가 아직 아니었다.

 

이 일을 계기로 가까왔던 선배와 나 사이는 서먹서먹,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후 선배는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으며 내가 연락해도 시큰둥한 느낌이었다.
2008년 연말, 직장 OB들의 만남 자리에서 그 선배를 만날 수 있었는데 
선배는 당시 뒷 일을 봐주지 않았다며 나를 원망한다고 고백하였다.

 

내가 더 도와주지 않아 영업이 활기를 띠지 못해 실패했다는 식의 푸념이었다.
그러나 나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도울 수 없었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이 얘기는 차라리 9년 전, 그 당시에 얘기했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시기에 하지못한 정당한 해명, 그로인해 선배와의 사이는 예전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