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돋보기

벌레 먹은 나뭇잎, 그후...

green green 2011. 8. 24. 19:05

 

 

 

 

            벌레 먹은 나뭇잎, 그 후

 
                                                         남기은 

지하철 몇호선인가

방호벽에서 본 인생진 시인의 시,
'나뭇잎이 벌레 먹어 예쁘다'는 시를 읽었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시이다

자기를 죽여가면서까지 남을 먹여 살리는

나뭇잎들의 숭고한 희생을 아름답게 그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 동네에서

처첨하게 구멍이 숭숭 뚫린 오동나무잎을 만났다.
갑자기 이생진 시인의 시에 반론하고 싶어진다

자기 잎을 벌레에게 먹이고 싶었을까?
그 어린 오동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 이 시간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문제의 벌레들아!
보이지 않아 어느벌레, 누구인지 모르지만
염치없다, 솔직히 너무하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