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낚시 이야기

남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

green green 2003. 1. 19. 18:55
1986년도의 나는 직장 낚시회를 통해, 또 개인출조를 통해 매주 출조로 가히 낚시의
파라다이스에 빠져있었다.
그 파라다이스가 가족을 포함한 주위사람들에겐 걱정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혼기를 이미 넘어선 나 자신이 결혼을 하고 싶지 않거나 여자를 사귀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였으나 좋아하는 낚시에 신경을 쓰다보니 결혼상대자는 물론, 사귀는 여자마저 없었던 것.
그것 참, 이럴 땐 불쌍하다는 표현이 맞나?
어머니는 수시로 나에게 결혼 할것을 닥달하셨고 내 밑의 세 동생들도 자기들의 결혼 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나의 결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근심어린 주문이 있을 때마다
"에이~ 어머니도 내가 하기 싫어 안해요? 결혼은 혼자 한답디까?"
하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위기를 넘기곤 했는데 이에 질세라 어머니는
"그럼 보라는 선은 왜 안보고 그러니?"
하시며 나를 책망하시곤 했다.
사실 그랬다.
'나는 뭐? 사랑하고 싶지 않아 그런 줄 아시나?'
'에구~ 그나저나 내 짝은 왜 아직 없는거여?'
하며 한탄할 무렵...

이제나저제나 하고 앞을 막고 있는 x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동생들은 싹수가 노란 것을 느꼈는지
한 살 아래의 여동생과 세 살 아래의 남동생이 1년차로 먼저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여섯 살 아래인 남동생 마져 나의 눈치를 보다 못해 슬그머니 나에게
얘기를 꺼냈는데...
"저~ 세째형! 이렇고 저렇고 한데 나 먼저 결혼하면 안될까?"
막내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녀석 위의 두 동생이 먼저 결혼 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차였으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얘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이제 너까지...?"
"이 형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네가 이제 몇 살이라고 건방지게 결혼하겠다는 거냐?"
"&&$#*$# %&%#!$% #@$@&$ %#%^*!!!"
여하튼 그날 막내는 얘기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나에게 단단히 혼쭐이 났다.

그 무렵 어머니의 간청으로 나의 반쪽을 찾던 6촌누님에게 전화가 왔다.
"얘야, 너에게 꼭 맞을 참한 색시깜이 있다."
"지금 미술학원 선생으로 있는데 너하고 전공도 같고, 어찌나 참한지..."
"내가 네 얘길 했더니 그 쪽에선 좋단다.
이번 주 토요일에 한 번 만나봐라, 만나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이 얘기를 들은 나는 귀가 솔깃하였다.
이미 두 동생들이 먼저 결혼 한 터에 언제부턴가 막연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쾌히 승락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
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을 보기로 약속했던 6월 세째주 토요일은 홍조회의 정기출조였던 것이었다.
할 수 없이 6촌누님을 통해
"이번 토요일은 회사일이 바쁜 날이라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만남을 다음 주 토요일로 변경합시다."
하고 그 쪽에 연락을 취했다.

홍조회의 6월 정기출조가 끝난 다음주 토요일 나는 콩딱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약속장소인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으로 향했다.
결혼상대자를 만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 때까지 개인적으로 여자라곤 사귀어 본 일이 없는
나로선 큰 일임에는 분명하니까...
약속시간에 맞추어 커피숍에 들어섰으나 그 많은 여자들 중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세상에~ 이 많은 여자들 중에 왜 여지껏 내 여자가 없었던거야?"
당시의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선을 보면 100%가 성공한다는 유비통신(?)이 있었던 터라
토요일 오후의 그 곳은 빈 자리가 없었다.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이름을 써서 건네주었더니 그 직원은 방송을 통해
"신반포에서 오신 OOO씨, 카운터에 손님 와 계십니다."
하고 부르는 곤 좋았으나 감정이 전혀 없는 목소리가 왠지 싫게 느껴졌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카운터를 향해 쪼르르 달려 나오고 있는 귀여운 그녀의 모습을...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예쁘고 귀엽게 생긴 청순한 그녀가 직감적으로 내가 찾고있는 그녀란 것을...
"저...OOO씨 되시죠? 저는 XXX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 말이 필요없었다.
서로의 이름으로 상대방를 확인한 우리는 그 즉시 커피숍을 나왔다.
무척 덥기도 했지만 낮이 길기도 했던 6월 말경의 토요일 오후,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냉면을
시켰는데 그 것을 먹는 그녀의 모습이 왜 그리 예뻤던지...
사랑에 눈이 멀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식사 끝나고 커피를 한잔 마셔도 그녀에 대한 아름다운 나의 마음은 식을 줄 몰랐다.
혹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한 편 보자고 그녀에게 주문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싫지 않은 듯
"글쎄요, 지금 영화를 보면 귀가시간이 많이 늦어질텐데요."
하며 귀가시간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그럼 영화 끝나고 제가 댁까지 모시면 되지 않을까요?"
하며 물러서지 않자
"네, 그럼 그렇게 하셔요."
하고 흔쾌히 대답을 했다. 애고 귀여운!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다크OO"이었던가? 아니면 "OO다크"인가?를 보고 나오니 시간은 이미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그녀의 집인 신반포 H아파트에 도착하니 1시가 넘어 있었다.
내일 전화하겠다고 약속한후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며 전농동 집으로
들어오니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싱글거리며 웃는 모습으로 들어 온 나를 보고 어머니는 안심을 하는 표정...
그 때 6촌누님에게도 전화가 왔다.
"호호호~ 너희들이 늦어서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했지, 그 쪽에 전화 해 보았더니
일단 맘에 든다고 하더라, 너는 좋겠다."
하며 좋아하셨다.
이렇게 하여 만난 그녀에게 매일 전화를 하고 이삼일에 한 번 씩은 만났는데 두번 째 만남에서
나는 그녀에게 낚시를 같이 가자는 권유를 했는데 그녀는 기분좋게 허락을 해 주었다.
그래서 세번 째의 만남은 낚시터에서 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