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목소리’ 하늘로 돌아가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향년 71세로써 6일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파바로티의 매니저는 6일 AP통신을 통해 파바로티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파바로티는 지난해 7월 췌장암 수술을 받은 후 투병생활을 해왔으나 지난달 고열 증세를 보이며
병원에 입원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20세기 후반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테너인 파바로티는
1935년 이탈리아 모데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빵사였고, 어머니는 담배 공장에서 일했다.
학창 시절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으나, 결국 음악으로 진로를 정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파바로티는 61년 오페라 ‘라 보엠’으로 데뷔했다.
7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도니제티의 ‘연대의 아가씨’ 출연을 계기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이 공연에서 모든 테너들이 두려워한다는 ‘하이 C’ 음역을 9번 연속 무리없이 소화해
관객을 열광에 빠트렸고 17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이후 파바로티는 승승장구했다.
88년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연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는 1시간7분의 박수와 165번의 앙코르를 받아
기네스 기록에 올랐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스리 테너 콘서트’를 열었다.
이 때 부른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이탈리아 월드컵의 테마송으로 사용됐으며,
대중음악 히트곡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스리 테너 콘서트’는 94, 98, 2002년 월드컵 때도 열렸다.
90년대 이후 파바로티는 대형 야외무대에 모습을 많이 드러냈다.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는 15만명,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는 50만명이 파바로티의 공연에 몰려들었다.
이 공연들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며 더 많은 시청자를 찾았다.
파바로티는 팝스타들과도 종종 어울리며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향 모데나에서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자선 행사를 열어 수익금을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 기부했으며,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와 함께 지뢰 제거를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육중한 체구의 파바로티는 무대에서 땀을 닦기 위해 하얀 손수건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됐다.
그러나 파바로티는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출연 일정에 변덕을 부려 일부 오페라 하우스의 원성을 산 적도 있다.
36년간 함께하다가 결별한 매니저는 파바로티가 악보를 읽지 못한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004년엔 69세의 나이에 여러 도시를 돌며 ‘고별 공연’을 열었고,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다시 한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른 이후로는 대중 앞에 서지 못했다.
그는 2003년 35년 연하의 여자친구 만토바니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61년 결혼한 첫 부인과는 별거 끝에 2000년 이혼했다.
파바로티는 2000년 ‘한반도 평화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등
몇 차례 한국팬을 만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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