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가 오던 어제 밤 퇴근 길,
아파트 단지 내의 화단과 정원근처...
어둠 속에서도 땅속에 스미는 빗물을 따라 땅 밖으로 기어 나온
연필굵기정도의 산지렁이가 여러마리 눈에 띄였습니다.
비 올때나 장마철이면 으레히 있는 일로 그들은 포장된 아스팔트에 널부러져
정신을 못차리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습니다.
재수없는 녀석들은 벌써 많은 수가 사람들의 발에 밟혀죽고
그것도 모자라 승용차의 타이어에 깔리기도 하며 많은 수가 죽어 있었습니다.
'음~ 가물치낚시에 이 녀석들을 미끼로 쓰면 좋겠군.'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출근을 위해, 등교를 위해 우리 가족은 매일 한 꺼번에 집을 나옵니다.
오늘 아침 우리 가족의 출근.등교길, 어제의 동일지역...
간 밤에 땅 속에서 새로 기어나온 지렁이들은 여전히
더러는 죽은 채로, 더러는 아스팔트 위를 어지러이 쏘다니고 있었습니다.
혀를 쯧쯧 차며 얘기했습니다.
"쯧쯧! 아까운(?) 놈들, 이 놈들 이대로 두면 다 죽을텐데..."
내 얘길 듣고 딸내미가 말했습니다.
"불쌍해~ 아빠! 이 지렁이들 화단 위로 올려줘요."
나의 대답은...
"그러고 싶지만 손에서 냄새 나고...
또... 시간이 없어, 출근해야지.'
옆에서 무표정하게 내말을 듣던,
오늘이 시험이라며 부지런히 학교를 가던 중3짜리 아들녀석이
눈에 띄는 지렁이 한 마리를 맨손으로 생포, 냅다 화단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또 한 마리, 화단 위로 잽싸게 내던졌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죽어가는 지렁이들이 안타까왔던 모양입니다.
징그러운 것은 그 다음, 손에 지렁이 냄새가 나는 것을 각오하고
그 일을 행하는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멋쩍어 하는 녀석의 손을 잡아주며 칭찬했습니다.
아들은 자기 손에서 냄새가 날거라며 아스팔트 바닥의 고인 빗물에
손을 씻었습니다.
녀석의 아름다운 마음에...
그 동안 밉살스럽게만 보였던 녀석의 행동과
내가 그에게 던졌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떠 올랐습니다.
"내일부터 시험이라며? 공부좀 해라, 공부좀..."
"학교 안가니? 지금이 몇신데 아직 그러고 있냐?"
"컴퓨터 그만 하고 TV도 꺼라! 네 방좀 치워라..."
"너 옷 입은 모습, 그게 뭐냐? 단정치 못하게..."
"머리좀 짧게 깎아라! 어차피 깎을 머리 왜 길게 깎니?"
그 후 6년,
세월에 가속기를 달았는지
이제는 그 아이들이 다 컸습니다.
아들, 큰 아이는 대학 휴학하고 군입대 대기중이며
딸, 작은 아이는 대입준비 한창인 고등학교 3학년 ...
오랫 만에 6년 전에 쓴 옛글을 뒤척여 꺼내어 음미하며
아이들의 지금 상황설명, 뒷부분을 고쳐 썼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아빠와 함께 교회로 향하는 우리 애들이 대견합니다.
green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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