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낚시 이야기

만년초보 green의 낚시 이야기 #5 (아! 운명의 그날...)

green green 2008. 9. 3. 10:44

그해 그러니까 1979년 7월,

길었던 28개월(4개월 단축 : 교련혜택)의 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개구리복으로 갈아입고 나도

남들이 하는 제대란 것을 하였다.
전방의 겨울은 길기도 하지... 바로 내가 제대하던 날이 7월 10일이었는데 바로 몇일 전에

동절기 방한복들을 반납했을 정도이니까.
제대하여 서울의 집으로 오니 흡사 봄이란 계절이 없이 바로 여름으로 후딱 뛰어넘은 것처럼

서울은 무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집 앞 계단을 올라가다 집에서 막 나오시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버지는 무척 반가와 하시며 약속이 있어 나가니 있다가 들어오셔서 보자고 하시며 눈가에

촉촉이 눈물을 글썽이셨다.
제대후인 그 때는 학교가 한참 방학중이어서 학교친구들은 만나지 못한 채 내 방에서 뒹굴뒹굴

한 일주일여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소일하고 있던 내가 딱했던지 아버지께서 "내일 나하고 낚시나 갈까?" 하셨다.

이말씀에 흔쾌히 "네" 하며 어디로 가느냐고 여쭸더니

"네가 군 생활 했던 한탄강으로 간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버지께서 사다 청량리에서 사다 장독대에 놓아두신 구더기의 봉지가 엎어져서

그 안의 구더기들이 모두 나와 장독대 이리저리 흩어졌던 것이었다.
그날 밤 더위에 잠 못이루는 나는 몸을 뒤척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으~음, 아버지와 낚시를 간다? 그런데 아버지는 견지낚시 하실텐데,

나도 견지낙시를 해봐?,
'아냐 아버지의 친구분들과 함께 간다고 하셨으니 아마 나는 제일 졸병으로 식사와 술심부름에

낚시커녕은 잘 놀지도 못할거야'
이런 저런 생각에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이미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낚시에 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집에서 낮잠이나 더 자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해가 벌써 꽤 높이 더 있었다.
그날이 7월 20일...
막 준비가 끝난 아버지께

"저 오늘 낚시 가지 않을래요, 아버지! 제 생각은 마시고 그냥 잘 놀다 오세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얘야 너 제대하고 일주일동안 별일없이 보내는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같이 가면 참 좋을텐데."하시며 무척 서운해 하셨다.
"얘야, 그럼 나중에 꼭 같이 가자.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같이 가자고 하시던 아버지를 혼자 보내드리고 아침겸 점심을 먹은 나는

예의 그때처럼 야전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대문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 때가 오후 4시 30분...
어머니께서 문을 열자마자 아랫집의 초등학교 4년생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말이...
"아버지께서 물에서 실종되셨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 아버지 따라 한탄강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낚시하러 물에 들어가 나오시질 않으셨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나를 보냈어요, 어서 가 알리라고..."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앞으로 쓰러지시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안방에 모셔놓고 큰형에게 전화한 후

여동생에게 어머니의 간호를 맡기고 나와 밑의 남동생은 한탄강의 현장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경원선의 출발지인 지금의 성북역에서 열차를타고 전곡역으로 향했는데

그날 따라 열차가 왜 그리 느리던지...

현장에 가보니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이미 아버지와 같이 갔던 일행은 아버지 찾기에 포기를 했는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실종장소인 전곡의 한탄강유원지 하류부근에서 그 동네사람과 몇몇 놀러 온 사람들에게

수소문 하여보니 아직 구조됐다거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나는 그 때까지 '설마 아버지가 물에 빠져 돌아가실려고?'하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그 옛날 젊으셨을 시절 양수리에서 한강을 수영으로 왕복하셨던 분 아닌가?

그날 밤 동생과 나는 그 근처의 구멍가게에서 민박을 하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미 실종되어 물속에 계신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가 저쪽 하류에서 헤엄쳐 나오셔서 이 가게로 들어오실 것만 같았다.
그날 안주없이 새우깡과 함께 마신소주가 3병...

이튿날 날이 새자 서울에서 어머니와 형님, 가까운 친척들, 온 식구가 현장으로 오셨다.
그러나 간밤에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 형제와 친척들은 아버지의 시신발굴을 위해 물가를 따라 하류로 하류로 탐사에 나섰다.
그때가 한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그곳의 현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장에서 약 4킬로미터쯤 되는 지점에서 한 낚시꾼이 남자의 시신을 시신을 물에서 건져냈으니

빨리 와서 확인하라는 전갈이었다.
나와 가족들은 단숨에 그곳으로 가서 확인을 했는데 아뿔싸 아버지가 분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머니는 또 한번 실신을 하시고.

아버지는 이렇게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을 해 본다.
만일 내가 따라 갔더라면 아버지는 물에서 돌아가지 않으셨을텐데...
아닌게 아니라 큰형님은 그 당시 나를 무척 원망하셨다.
내가 따라 갔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아버지의 상을 치룬 후 어머니는 큰형님이 그런 애기를 하면 큰형님에게 역정을 내시곤 했다.
"제 아비 죽는 것 보고 가만히 있을 아들이 어디있니?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다 함께 죽는 걸 한두번 봤냐?

만일 네 동생이 따라갔으면 네 동생까지 물에 빠져 죽었다."며 나를 위안시키곤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집에 있는 낚시도구란 도구는 모두 씨를 말리셨다.
아버지가 낚시때문에 돌아 가셨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