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사(音樂萬思)/이야기가 있는 노래

동요 '우산(윤석중 작사 이계석 작곡)'의 진실은 무엇일까?

green green 2009. 6. 5. 12:11

겨우내 지독한 가뭄으로 신음한 이 땅에 봄이 오면서 촉촉한 비가

전국적으로 몇번 내린 덕분에 공기가 깨끗한 탓에 올해는 시계(視界)가 좋다.

지난  봄 어느날 아침, 새벽부터 내리는 비를 맞으며 출근하던 길에
제 흥에 겨워 어렸을적부터 입에 익고 귀에 익은 동요인 윤석중 작사, 이계석 작곡의
'우산'을 나지막히 불러 보았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우산∼ 파란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길에 우산 세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에서 질곡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오르는 건 웬일?
1948년 작곡 발표된 이 노래 가사 속에서 1945년 해방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데올로의 현실이 떠오르니 왜일까...
노래 가사를 음미해 보면 나 혼자만 느낀 것인지 몰라도
이 노래를 작사하신 윤석중 선생님이 사시던 그 때의 상황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떠했는가?
'우산'이 발표되던 1948년의 세계 상황은 2차 대전 끝난 후
미소의 냉전이 한창 시작되던 때였다.
우리나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그보다 3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강대국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얽혀 두 동강 난채 맞이하였다.
그 상황을 동요 '우산'을 통해 표현하신 건 아니었는지...

 

이른 아침의 이슬비는 세계정세 속 이제 걸음마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태동의 표현이요,
'빨간우산'과 '파란우산'은 해방이후 정부수립 때 까지 계속되어 온
이데올로기의 표현은 아니었는지...
또 다른 표현의 '찢어진 우산'은 그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
멍들고 찢어진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표현한 건 아닌지?

'좁다란 학교길에 세 우산이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간다'는 것은
넓지않은 한정된 우리 국토 '한반도'를 표현하신 것 같다.

 

남북이 따로 이룬 정부수립으로 분단된 한반도,
크고작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속에서도 우리 민족 모두가 정해진 외길로
함께 가고 있는 상황을 동요의 가사로 표현하신 것 같이 느껴진다.   

아쉬운 것은 고인과 만나 이 노래를 작사하신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윤석중 선생님께서는 이미 6년 전인 2003년 12월 타계하셨다.
돌아가신지 만 5년이 흐른 지금...

작사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아흔 다 되신,

이 노래의 작곡가 '이계석 선생님'께 여쭤볼 수는 더욱 없는일.

 

본능인 궁금증을 못이겨 몇일동안 인터넷을 뒤져 동요 '우산'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ON LINE의 각 카페, 블로그 등에 이 노래와 주변 이야기가 실려져 있었지만
정작 이 노래 가사의 해설을 따로 다룬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 하나,
여러개의 카페, 블로그에 실려진 이 동요의 세째 단 가사가 지금 달라진 것 같다.
'빨간우산'과 '파란우산'은 '파란우산'과 '깜장우산'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바뀌어져 있는듯한 현재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길에 우산 세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웬일일까,
처음부터 이렇게 발표된 가사의 내용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잘못 전승되어진 것은 또 아닐까?
아니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랫가사를 잘못 알고 불렀단 말인가?
진실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