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을 끝내고 어두워오는 거리에 나서면 간혹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다.
요즘 한창 물오르기 시작한 전어 회에 소주 한잔...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일화를 가지고 있는 전어...
얼마나 맛있길래...
개인적으로 전어구이보다 전어 회를 좋아하니
수조 안에서 펄떡거리는 전어가 그립다.
그래서 퇴근 길의 발길을 수산시장으로 돌린다.
선선해진 날씨에 수산시장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었다.
시장 안에 죽 늘어선 횟감 파는 집에선 삐끼(?)들이
"사장님 싸고 싱싱한 회 구경 하실래요?" 하며
여기저기서 부르거나 막아서서 팔소매를 잡고 난리를 친다.
점쟎게 이 사람들을 물리치는 것도 기술이다.
"아! 단골이 있어요." 또는...
"게 사러 왔어요."
등등의 말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계속 따라 붙으니까.
정작 전어의 가격구조를 모르니 먼저 시세를 알아야 한다.
시세를 알아 보면 작년 가격으로 18,000원 내면
그냥 먹을 수 있도록 1킬로그램의 회를 떠 준다.
비싸게 느껴지면.
살아있는 전어를 팔기만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이동,
가격을 물어보라, 1킬로그램에 10,000원쯤 한다.
그곳에서 1킬로그램을 사다가 시장 내 회 뜨는 집으로 가서
4,000원을 들여 완성품을 만들면...
정성껏 깨끗하게 회 뜨는 솜씨가 가히 4,000원이 아깝지 않다.
이렇게 따로따로 횟감과 회 뜨는 가격을 지불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4,000원을 절약한 것이 된다.
흐뭇한 마음으로 큰 사이즈의 일회용도시락에
하나 가득 담긴 전어회를 들고
동네 수퍼에서 소주 한 병 사 들고 귀가하여 냉장고 야채칸 뒤져
깻잎과 상추에 곁들여 소주와 함께 먹는 맛이란...
캬~
큰 것은 낱마리로 거래되지만 작은 것은 무게로 거래된다.
예전에는 열마리를 한 묶음으로 가느다란 대나무에 끼워서 팔았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전어(箭魚)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하는데 대로 엮어 팔았기 때문에
전(箭)이란 글자를 사용, 이름이 전어(箭魚)가 되었다.
산지에서는 제철이 되면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 예약이 폭주하지만
양이 적어 주문대로 팔 수가 없다고.
귀하신 몸 전어,
그래서 이름도 이제 전어(箭魚)가 아니라 전어(錢魚)가 됐다고 한다.
내일이라도 당장 퇴근길에 수산시장으로 가 보시라.
팔딱거리는 전어가 우리를 유혹할지니...
내친김에 정일근 시인의 전어 시 2편을 소개한다.
가을 전어 /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가을 바다를 즐기자
제철을 아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맛이 되고 약이 되느니
가을 햇살에 뭍에서는 대추가 달게 익어 약이 되고
바다에서는 전어가 고소하게 익어 맛이 된다
사람의 몸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을 채우자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밤이 깊어지면 연탄 피워 석쇠 발갛게 달구어 전어를 굽자
생소금 뿌리며 구수한 가을 바다를 통째로 굽자
한반도 남쪽 바다에 앉아 우라나라 가을 전어 굽는 내음을
아시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즐겁게 피워 올리자
ㅡ2004년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가을 전어를 살리다 /
용주사에서 하안거 마치고 오신 현전 스님 앞에
두툼한 가을시편들 자랑처럼 펼쳐 놓았는데
시 수십 편 읽으시다 한 줄*에 놀라 물러서신다
칼로 썰어달라니! 시에 피냄새 진동하는구나!
스님 주장자 들어 내리 치신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마음에 피 흘리지 않고
그분의 길 조용조용 따라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시에서 풍기는 피냄새 내가 알지 못했구나
어쩔거나, 시가 저 착한 것들 모두 썰어버렸구나
어쩔거나, 무심한 시가 칼이 되어 생명 저미었구나
가을 전어들 시로 죽였으니 시로 살리기 위해
가을이 오는 바다에 시를 용서처럼 풀어놓는다
가을전어들이여, 너희들 살아서 바다로 돌아가시라
몸 속 서 말 깨는 탈탈 털어 세상에 던져 버리고
현전 스님 들려주시는 화엄경 뼛속 살 속에 담고
그분의 바다로 돌아가 극락왕생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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