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가족 이야기

추석, 명절 쇠기...

green green 2010. 9. 16. 23:49

 

 

올해도 민족 최대명절,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농사에 기반을 두고 있던 우리 선조들의 가을 결실을 자축하고
조상님들에게 그 감사하는 축제의 날이건만 올해의 추석은 예년답지 않음이 있다.
추석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남대문시장의 모습을 보여 준 TV뉴스는 이제 단골이다.

경기가 나빠도 그 추석이 어디 가겠는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이 민족 최대의 명절답게

5000여년 가까이 쇠어오고 또 지내 오던 것을...

시장경제에 따라 다소 위축되긴 했어도 어김없이 추석은 우리 곁에 돌아왔다.

동작 빠른 사람들은 오늘이나 내일부터 추석 쇠기가 시작되었으니

대부분 내일 오후부터 민족대이동에  따른 부산함이 시작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옛날 30여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만 해도 우리 집의 추석명절은 부산하지 않았다.
부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명절을 쇠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차남으로서의 아버지가 매년 양수리 큰댁으로 할머니를 찾아보며 차례를 지내시러
떠나시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학생시절 아버지 따라 큰댁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 때의 그러한 일들이
지금의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경험으로 남아있다.
서울서 60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양수리였지만 당시의 교통 사정은 열악했다.
흡사 교과서에서 보던 6.25 때의 피난열차처럼 객실칸 아닌 화물칸에 다른 귀성객들과
빼곡히 앉아 연발에 연착을 밥먹듯 하는 임시귀성열차를 타고 다녔던...

 

아니면 2차대전 때의 아우쉬비치 수용소에 끌려가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그랬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1979년 이후, 우리집 명절 풍습은 바뀌었다.
아버지가 고향 땅에 영면하시니 양수리로의 귀향전쟁은 끝나고 대신 우리집에서

지내는 명절 아침의 차례가 시작된것...

 

차례는 아들인 큰형님과, 작은형님, 나와 두 남동생 등 5형제가 제관으로 참석했다.
장남인 큰형님의 인솔로 이루어지는 차례는 항시 5형제가 모여 지내곤 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던 1988년 5형제 중 작은형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차례 지내는 인원이 4형제로 줄면서 집안에서의 명절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모두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니 제수와 지방을 준비,

차례를 지내는 방식도 어머니의 제안과 추진으로 전통방식에서 모여 기도하는

추도회형식으로 바뀌었던 것...
그 후 12년 전 큰형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셨다.

그 바람에 5형제 중 3남이었던 내가 졸지에 장남이 되었다.
올해로써 장남 12년차...
본디 장남은 내 몫이 아니었지만

이 땅에서 자자손손 살아 온 우리이므로 추도회로서의 차례는 계속되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이 추석,

월요일 낮이면 서울에 살고 있는 두 동생 가족들이 우리집에 올 것이다.
음식 올려놓고 지내는 차례가 아니므로 제수장만은 없지만 두 제수씨와 아내는

추석음식을 위해 쇼핑하랴, 지지고 볶고 부치고 조리하랴... 바쁠 것이다.
우리 삼형제 역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정, 지난 벌초 때 얘기 나누랴 바쁠 것이다.

 

추석 아침 일찍 가족모임 후 양수리에 있는 큰댁에 조카들과 합류,

차례 참관하고 조상님과 부모님과 작은형님의 묘에 성묘를 하면서

추석의 하루를 보내겠지.

올해 설 때는 전날 성묘를 다녀 왔는데 동생들과 협의, 올해도 드렇게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