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의 분쟁으로 금년엔 어려울줄 짐작했던 벌초,
열흘 전 쯤 동생을 통해 날짜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달력을 보니 벌초예정 날짜는 9월 5일 일요일로써 추석연휴를 16일 정도
앞둔시기다.
예로부터 추석 보름 전부터는 풀이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하므로
보통 그때 벌초를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이다.
집앞에서 동생의 차에 합승한 시간이 6시가 채 안된 시각, 양수리를 향했는데
벌초차량이 많아 미사리에서 건너는 팔당대교 건너기가 수월치 않다.
양수리 시내에 도착, 벌써 여러해 벌초 때마다 꼭 들르는 해장국집을 찾았다.
돼지 등뼈 푹 고은 국물, 배추 우거지의 해장국은 뼈 뜯는 재미도 쏠쏠한데
막내가 빠진 자리, 늘 삼형제가 먹던 해장국을 둘이 먹자니 예전처럼 맛있지 않다.
큰집에 도착하니 4촌형수님 나이보다 더 늙은 담장에 핀 호박꽃이 반긴다.
대전에 사는 넷째 조카는 이미 선착, 잘 듣지 않는 예초기를 몇번이고 시동걸어
문제없이 길들였을 즈음 장남 빠진 3조카가 도착했다.
예년의 벌초는 우리 3형제 조카 5형제, 도합 8명의 장정이 행사에 참여했으나
올해는 양가에서 한 명씩 빠져 6명이 되었다.
세 대의 차를 조카들과 나누어 타고 묘지로 이동, 4기의 묘를 순서대로 벌초에 들어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4촌 형님...
벌초 1년 만에 다시 찾은 묘는 잡풀과 온갖 식물이 무성해 봉분과 바닥의 구분이 없다.
한 번 만 우리들이 찾지 않아도 남들 보기에는 졸지에 후손 없는 묘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합장분을 사용, 봉분은 1기인데 묘는 두 분이 합장되어 있다.
한 비석에 조부모 두 분의 함자가 올라가 있으므로 언뜻 보면 한 분의 묘로 여겨진다.
따라서 두 분이 따로 묘를 쓰는 다른 집안에 비해 벌초 시간도 그만큼 절약된다.
뙤약볕 아래 벌초하는 사이 근처 숲풀에는 잠자리 한 마리가 한가로이 쉬고 있다.
우리들의 벌초하는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는걸까?
작업 중에도 핸폰카메라로 찰칵!
하늘은 맑아 볕이 쨍쨍한 날, 예초기 엔진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며 실력을 발휘하자
펫트병에 얼려 온 물도 뜨거움에 목마른 우리 목을 축여주며 진면목을 나타낸다.
예초기 한 대, 낫 두개에 갈퀴 하나...
6명이 힘을 모으니 서너 시간 만에 일이 끝난다.
막내 조카가 가져 온 3병의 냉막걸리를 2병은 마시고 1병은 각 묘에 한잔 씩 부었다.
작업 끝나고 내려 가기 전, 언제나처럼 쓰레기는 없나 살피며 산소 주변 정리를 깨끗이 했다.
올라갈 때에 비해 뛰다시피 내려가도 될 정도로 순탄한 하산 길,
그때 만난 노란색의 커다란 꽃은 접시꽃만큼이나 큰데 그 이름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핸드폰 카메라로 한 컷 찍고 또 다시 내려 오는길,
내가 입은 옥색의 폴로 티셔츠 어깨 아래 왼 팔 부분에 커다란 풀무치가 날아와 앉는다.
웬만한 움직임에도 도망가지 않는 녀석에게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또 한 번 찰칵!
그래도 도망가지 않던 녀석이 한 눈을 판 사이 수수밭으로 날아가 버렸다.
조카들과 함께 하산, 양수리 시내 나가 점심식사라도 함께 하시고 가라는 그들의
부탁도 듣지 않고 한 시간 여만에 송파 집동네에 도착했다.
더위를 탔으니 점심식사로 갈비구이와 냉면을 먹자는 동생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계산은 자기가 한다니 더욱 좋고!
핸드폰으로 아내를 불러내어 함께 푸짐한 식사를 할 때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우르릉 꽝~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휴~ 1시간 만 늦었어도...
올해의 벌초는 이렇게 끝났다.
애당초 우리 3형제가 올해는 대중교통편으로 다녀오면서
술 한잔 하는 편이 좋겠다고 합의 했으나
전기공사 일을 하는 막내가 업무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벌초 후의 음주 계획을 철회, 동생의 차로 두 형제만 다녀 왔다.
이번 벌초,
내가 제일 연장자이며 항렬 높았음에
세월무상함을 느꼈고 인생무상함을 더욱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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