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사(音樂萬思)/이야기가 있는 노래

포스터의 추억, 가장 미국적인...

green green 2011. 1. 14. 09:55

1960년대 초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지나면서 노래를 배웠다.
노래를 배웠다고 해서 노래 선생님을 통해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던 나보다 두 살 위와 일곱 살 위의 두 누나가 멜로디와
앨토 이중창을 부르곤 했는데 함께 따라부르다 보니 노래가 배워졌다.

 

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음악 교과서의 노래를 비롯하여 외국의 포크송을
불렀는데 그 중 미국의 포스터가 작곡한 노래가 단연 많았다.
음악교과서에서는 포스터(Foster, Stephen Collins)를,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
칭하고 있었으며 비교적 부르기 쉬운 그의 곡이 많이 수록되었고 불리웠다.

 

그때 익힌 노래를 지금껏 부르고 있는 터인데 당시 배운 노래로는
오, 수재너(Oh, Susanna), 스와니 강(Swanee River), 시골 경마장(Camptown Races),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 올드 블랙 죠(Old Black Joe), 금발의 제니
(Jeanie with the Light Brown Hair), 아름다운 꿈(Beautiful Dreamer) 등이었다.

 

서정적 작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멜로디를 선사한 천재 작곡가 포스터는
1826년 미국 서부 피츠버그 로렌스빌 근교에서 태어났다.
플류트 교육을 잠시 받은 것이 음악교육의 전부였던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 어려서부터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적 소양은 누이들이 부르던 전승민요와 흑인 교회에서 부르던 노래,
일하던 일터에서 흑인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 등을 통해 길러지고 다듬어졌다.
결혼할 때 피츠버그의 내과의사 딸 제인 맥도웰에게 청혼한 남자들이 많았으나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1850년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스와니 강'의 악보는 13만장이나 팔려 영국에서조차 유행하였으며 크림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도 고향을 그리워 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흑인들의 애환이 짙게 밴 그의 노래는 남북전쟁 중 노예제를 사수하려는
남부인들에 의해 급속도로 인기를 잃게 되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그의 낭비벽과 수입의 감소로 파탄에 이르렀으며
가난에 허덕이는 생활이 되고 말았다. 
평생 노랫말까지 직접 자작한 2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한 그는 악보의 인세가
수입의 전부였지만 자신을 지키고 키울 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이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던 1857년, 앞으로 그가 작곡하게 될 모든 노래의
수익권마저 악보 출판업자에게 약 1,900달러에 팔아넘길 정도였다.
그의 노래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의 대부분은 출판업자와 연주자들에게 돌아갔으며
이미 절망과 알코올 중독과의 싸움에 지쳐 있던 그는 1860년 뉴욕으로 이사하였다.

 

가난으로 비롯된 결혼생활 파탄은 치명적이었다.
'금발의 제니(Jeanie with the Light Brown Hair)'는 그의 아내를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이 노래는 경제적 파탄으로 별거에 들어갈 무렵인 1854년 작곡한 곡으로 제인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그리움이 표현되어 있지만 제인과는 1855년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그 이후 그는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다가 영양실조와 폐결핵을 얻는다.

1862년 아내 제인은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으며 2년 후인 1864년 37세의 나이로
포스터는 사망한다.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 방 화장실에서 쓰러지면서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혀 출혈과다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가 숨진 후 남긴 것은 그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녹슨 38센트와 유서뿐...

이제 미국인들을 그를  '미국의 슈베르트'라고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284곡의 아름다운 가곡을 남긴 그를 역시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와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서정적 풍부한 선률과 심성이 착한 것과 말년에 지독한 가난으로 고생한 것까지

슈베르트와 같다. 급기야 미국인들은 50센트의 동전에 포스터의 얼굴을 넣었고

공원과 선박, 교량, 도로에도 그의 이름을 붙였으며 심지어 장미와 난초에도

그의 이름을 사용한 품종이 있다고.

 

어제가 포스터가 세상을 떠난지 147주기 되는 날이었다.

플로리다 주에 있는 스와니 강에는 작곡가 포스터를 기리는 유람선이 떠 다니며

해마다 이곳에서는 플로리다 포크 페스티벌이 진행되며 2월에는 '금발의 제니'

선발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20세기의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 조지 거쉬인보다 더 일찌기,

'미국적인 작곡가'라 칭송받은 포스터(Foster, Stephen Collins)...

그가 이렇게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으며 300여년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라 불리는 것은 결코 모자람이 없다.

 

 

Jeanie With the Light Brown Hair / 강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