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낚시 이야기

비 오는 날의 소나기 입질..

green green 2003. 10. 7. 09:37
좋은 추억일수록 기억에 남는 법...
출조지에서의 기억은 웬만하지 않고는 점수를 후히 쳐서(?) 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마련이다.
15년 전의 충주호가 한창 뜰 때 그곳으로의 잦은 출조는 아직까지 나에게 더 없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해, 충주호에서 밤새 도닦던(?) 낚시를 한 그 다음 달 정기출조일인 토요일...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도 아예 무시하고 우리 직장낚시회는 지난 달의 충주호에서의 어이없는 참패에 설욕이라도 하려는듯 근무가 끝나기 무섭게 충주호를 향했다.
지난 달의 패배때문인지 회장님은 아예 고무보트를 준비하시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이번에도 목표는 공이교 아래 평지였는데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 때문인지 지금껏 낚시하던 팀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덕에 운 좋게 그 자리를 접수할 수 있었던 우리는 먼저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게속적인 밑밥효과로 앉자마자 순조로운 낚시를 할 수 있었는데...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혀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일기속에서도 간헐적으로 입질을 받을 수 있었다.
회장님은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구닥다리 발펌프로 한동안 공기를 주입, 고무보트를 물가에 띄어놓고 있었다.
우리의 낚싯대 저 멀리 물 한가운데 떠 있는 고무보트에서도 입질은 오는가 보다.
활처럼 휘어진 짧은 대로 붕어를 제압하는 회장님의 모습이 가끔 보였다.

평균 씨알은 7치 정도... 붕어빵 처럼 그 크기가 고른 편이다.
ㅎㅎㅎ 이 정도의 조과면 지난 달 이 곳에서의 어이없던 해프닝도 설욕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설욕중인 걸?
날씨가 흐린 날이면 저기압이라 낚시가 되지 않는다는 근거있는듯한 속설도 공이교 아래의 포인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드디어 주위가 어둑해 지면서 밤낚시가 시작되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으나 나는 밤낚시를 선호한다.
해가 떠 있을 때의 부지런한 미끼 갈기와 헛챔질 후 캐미를 꺽고 몰입하는 밤낚시는 항상 마음을 부풀게 한다.
저녁식사가 귀챦을 정도로 찌톱의 캐미라이트 불빛에 매혹되는데 어던 대는 담배 피는 일조차 소변 보는 일조차 귀챦아지기도 한다.

그 날도 귀챦긴 하지만 저녁식사를 하고 막 돌아와 앉는 순간 '드르륵' '덜컥' 하더니 2.5칸이 받침대를 빠져나와 물 밑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크! 대물이다!'하며 물 밑에 덜어진 대를 잡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달아나더니 점점 멀어진다.
'아뿔싸, 늦었군!'
식사를 하러 뭍으로 올라오신 회장님의 보트에 급히 올라탔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 해 노를 젓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보트가 제 방향을 잡지 못한다.
아니, 내가 노를 제대로 젓지 못하는 것이리라...
보트가 가까이 가는대로 이리저리 빼는 낚싯대를 겨우 잡아 세우고 제압을 하려 하니 이것 마져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붕어인지 뭔지 모를 낚시바늘에 걸린 녀석은 자꾸 보트 밑으로 파고 들어가 얼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웬만큼 큰 녀석은 되는듯 싶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번... 급기야 그 녀석은 얼글은 보이면서 내게 항복하고 말았다.
여유작작 끌어낸 그 녀석은 붕어였는데 이래도 되는건가?
생각보다 너무 작은 녀석 아닌가?
줄자를 꺼내어 재어보니 17.5센티였던가?
기가 막혀 '허허' 하고 웃었다.
웬놈의 붕어가 이렇게 힘이 센지...
중치급 주제에 대물 흉내를 내어도 되는건지... 별꼴 다 보겠네.ㅋㅋㅋ

이렇게 공이교밑에서의 밤은 가고
어제부터 잔뜩 흐린 하늘이 아침부터 소나기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내리는 소나기와 함께 소나기 입질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바람은 불지않아 빗속에서도 입질은 확연히 드러났다.
2.0, 2.5, 3.0의 낚싯대가 알맞은 시간 터울을 두고 계속 입질을 해 대는 것이었다.
흡사 자동차엔진의 피스톤작용처럼...
비가 많이 내려 비옷을 입지않고는 낚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리기 시작해도 입질은 끊임이 없었다.
차라리 옷 젖는 걱정 없이 웃통을 벗고 하는 낚시가 더 편했다.
그렇게 찡하던 비도 한 30여분동안 내리더니 이내 가라 앉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듯이 그와 동시에 입질도 뚝!

말로만 듣던 비 오는 중의 소나기입질을 받았던 것이다.
낚시를 끝내고 대를 접기 전 살림망을 들어보니 묵직했다.
대충 세어보니 한 50여마리는 족히 될듯 싶었다.
집사람과 결혼하기 전이었던 그 작년여름, 고삼지에서의 장박 떡붕어 잔치 이후 제일 좋은 조과였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준.월척급은 한 마리도 없이 7치를 갓넘는 붕어빵표인 것이 좀 아쉬울 뿐...
어찌 하랴?
그 당시의 충주호는 신생지로써 월척이 없다고 할 정도로 월척구경을 할 수 없던 처지였으니...
생각해 보니 옛날 고등학생 때 퇴계원의 어느 보에서 처음 하던 날도 이슬비가 내렸다.
지렁이를 쭈욱쭉 올리던 뼘치급의 붕어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가 내리면서 물 속에 산소가 더 유입되어 붕어들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먹이활동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란다.
이 날의 경험 이후 비 내리는 날 낚시가 잘 된다는 속설을 믿게 되었고 그에 따라 출조하지 못하는 토요일 특히 날씨가 꾸물거리기만 하면 괜시리 좀이 쑤시곤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낮은 하늘,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따라 여기저기 그려지는 동심원...
그 동심원 사이를 비집고 또 하나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미친년 널 뛰듯이 쭈욱쭉 올리는 찌의 환상...
나는 아직도 비 오는 여름날이면 물가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