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그해 봄, 강원도 사무곡의 철천지 비극...

green green 2006. 11. 10. 12:20

5년 전 여름, 모 이동통신회사에서는

당시 K1TV 10부작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나온

'영자'를 광고모델로 기용하여 세간에 화제를 일으켰다.

TV 다큐와 CF를 통해 눈에 익을만큼 소개되었던

부녀가 살던 강원도 사무곡의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

당시 강원도 삼척군 신기면 대평리 사무곡은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산골로서 집이라곤 영자네 한채 뿐이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그곳이 좋다는, 역시 세상의 때 묻지 않았던

영자는 당시 초등학교 1주일 다닌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그래도 글 재주와 그림 솜씨가 뛰어난 영자는

소설가 꿈을 키우며 우리가 어렸을 적 들었던 옛날이야기처럼

아버지와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오지중의 오지, 사무곡의 비극은

이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영자가 TV방송에 출연하고 나서 세상의 발길이 줄을 이었던 것.

그곳이 궁금했던 사람이나 영자의 팬, 지나가는 등산객과

관광객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영자는 소설가인 그녀의 꿈을 위해

검정고시공부를 시작,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 동네를 통틀어 이웃이라고는 없는 첩첩산중에서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세상에 내 보낸 아버지는 긴 겨울을 외로이

눈물과 싸우며 지내야 했다.

이렇게 혼자 된 고독을 눈물로 보내던 그 이듬해 어느 봄날,

아버지는 어느날 영자의 TV와 광고출연료에 눈독을 들인

괴한(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영자는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졸지에 아버지를 잃었어야 하는 그 댓가가 너무도

비쌌으며 가혹했다.

모 이동통신회사의 당시 광고진들은 아버지와 영자를 또 다시

모델로 기용하여 후속으로 문자전송, 채팅 등으로 멀리 헤어져

있어도 "매일 만나는 모녀편'의 후속광고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TV에 출연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방송진의 눈에 띄지만 않았어도

영자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그 곳에서 그녀의 꿈인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뉴우스에 비쳐졌던, 아무도 찾지 않는 영결식장에서 비명에 가신

아버지를 지키는 영자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왔다.

그들을 처음 세상에 소개한 것도 TV, 아버지가 살해된 소식과

쓸쓸한 빈소를 지키는 영자를 한 편의 드라마같이 소개한 것도 TV.

뻔뻔스러럽기 그지없는 TV, 그깟일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싫던좋던간에 결국 영자부녀는 문명의 이기, TV매체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은 그날 저녁 TV뉴우스에서는 그가 홀로 살던

단칸 방과 범인(들)에 의해 어지럽게 흩어진 살림살이며 집안

구석구석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그 외딴 집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헐렸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사무곡의 부녀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다.

지금 이시각,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가 듣고 싶은 이유는

뭔가 답답한 마음에서 일뿐은 아닐 것이다.

 

green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