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집에서 개를 키웠다가 실패(?)한 이후로 우리집엔 몇 년동안 개를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헌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또 한번 개를 분양받아다가 키운 일이 있었으니 이것이 나와 우리집 개의 두번 째 만남이었습니다.
1971년 11월인가 역시 촌수가 좀 먼 친척 할머니 댁에서 다 큰 개를 한 마리 얻어오게 됩니다.
이미 자랄대로 자란 그 개의 품종은 알 수 없는 혈통(?)의 좀 작은 종자였는데 흰 털에 검은 갈색의 털을 가졌고 이름은 보비(Bobby)라는 예쁜 이름이었습니다.
우리집에 들어온 후 개명하지 않고 이름을 그냥 먼저 할머니댁에서 부른 이름을 그냥 부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옛집이 생각나서 그런지 아니면 낯선 분위기가 서먹서먹했는지 우리 식구들을 별로 따르지 않고 마루 밑에서 고독을 씹으며 지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밥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옛날 주인이 와서 매끼마다 밥줍니까?
눈물 흘리며 빵 먹어본 경험 없던 Bobby는 드디어 눈물 흘리며 빵 먹는 인생... 아니, 견생을 터득했습니다.
사나흘 후 의기소침했던 녀석의 행동에는 이제서야 주인을 알아보는 눈치가 보였습니다.
Bobby는 마루 밑이 자기의 집이요,
마루 위의 사람(우리 식구)들은 모두가 자기의 주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쭁과는 달리 순하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이 분명했습니다.
거기에 똥오줌까지 가릴 줄 아니 어찌 명석하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Bobby는 집안 식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문 앞까지 달려나가 꼬리를 치며 살살대는 것이 그 녀석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Bobby의 그러한 붙임성울 좋아했으나 혹시 이 녀석이 아무나 보고 그런 것 아닐까? 하고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은 기우, 명석한 이 녀석은 손님이 우리 집에 들어오면 짖어대는 등 개로선 당연한 집 지키는 일도 거뜬히 해 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특히 나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무서워했는지,나를 보면 멀리서부터 오줌을 찔끔찔끔 싸며 설설 기어 오는 완전 복종(?)의 뜻도 행동으로 보이곤 했습니다.
이런 녀석을 내가 미워할리가 있겠습니까?
남들보다 더 많이 예뻐해(?) 주었는데 식구들은 나에게 너무 개를 가지고 못살게 군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만 보면 오줌을 지리며 설설 긴다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재수,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보비는 우리 집 마루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 때는 특히 이래저래(?) 술을 많이 마시던 시기였습니다.
그날도 마침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왔는데 모든 식구들은 자기의 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건만,
유독 이 녀석 혼자 나를 알아보고 기다렸다는듯 설설 기며 다가오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꽉 껴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석의 집이 있는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Bobby를 꼭 끌어안고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집안은 아침부터 술렁거렸습니다.
통금이 있던 그 때... 어젯밤 내가 집에 들어오지 못했는지 알았던 모양입니다. 헌데 동생이 마루 밑에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식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가 마루 밑에서 쥐약 먹고 죽었는지 알았다나?ㅋㅋㅋ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간혹 늦거나 연락없이 못들어 오는 날은 식구들이 혹시? 하고 마루 밑을 뒤졌다고 하니...
이제까지의 사회에서의 모든 일은 추억으로 남긴 채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군에서의 시간은 밖에서 처럼 그렇게 빨리 가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첫 휴가 나와 집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집안이 적적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응당 반겨줄줄 알았던 마루 밑의 Bobby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강남의 청담동 소재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공장에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그 공장의 책임자인 작은형님께 직접 여쭸더니 아버지 공장에 도둑이 들어 보비를 내가 입대하던 달, 그 곳에 경비견으로 파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내일 보러 가야겠다고 하니 형님은 말끝을 흐리며...
작은형: 그런데 Bobby는 지금 거기에 없어.
green: 왜요? 그럼, 어디 있어요?
작은형: 응, 그 곳에 갖다 놓은 지 몇일 만에 실종되었어.
green: 실종이요? 집을 나갔단 말입니까?
작은형: 나도 잘 모르겠어. 공장인부들이 잡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green: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형.
작은형: 글쎄... 그 당시 근처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뼈다귀들이 발견되었거든. green: 엥? 뼈다귀요?
작은형: 그래, 근데 그 뼈가 꼭 Bobby 뼈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green: ?...!
이렇게 하여 우리집에서는 개와의 인연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집에서 개를 기르지 않았습니다.
Bobby는 햇수로 6년을 우리집에서 같이 지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를 무서워하고 따랐던(?) 보비의 최후가 나를 숙연하게 합니다.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으로 화장실용 정화조를 설계, 시공하는 사업을 하실 때였습니다.
현재의 청담동 한양아파트 자리에서 부지를 임대하여 정화조를 만드셨습니다.
작은형님 역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 때 형님이 공장 책임자로 계셨을 때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형님은 쓰레기장의 뼈를 물증으로 인부들에게 다그쳐 물어 자백을 받아내었답니다.
우리집에서 6년간 같이 지낸 Bobby를 그들이 직접 해쳤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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