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은지 6개월여 나날이 흐른 1992년 가을,
그 사이 참을만한 정도의 금단현상을 지나 신체의 변화가 온 것이 느껴졌다..
배가 조금 나오고 있음을 당시 담배 끊기 전부터 느껴왔으나, 끊은 후
부쩍 더 나온 것 처럼 느껴지는 배를 보고 나보다 남들이 더 놀란 눈치였을즈음...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군것질이든 아니든 담배를 끊기 전보다 뭔가를 더 먹고 싶은 욕구가 더 느껴지는,
아마도 이것도 금단현상이었나보다.
어쩔 수 없는 허전함, 입 안의 궁금증(?) 때문이었음이 틀림없다.
당시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음에도 깊은밤이면 뜬금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듯 싶다.
그때부터 그렇게 생긴 습관인지 지금도 퇴근 후 집에서 뭣 좀 먹을 게 없나? 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보는 등 살핀다.
그러다 가끔 나의 눈에 탕수육이나 피자, 치킨 등을 배달시켜먹은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누가 먹었을까? 누구긴 누구랴!
우리 가족, 아내와 아들과 딸이지...
green : 두리번 거리다 말고...
"어! 뭐 맛잇는 것 시켜먹었나 보네욤?"
greenbell : 조금 당황한 표정, 그러나 애써 '오랫만에'를 강조하며...
"응~ 애들이 먹고싶다고 해서 오랫만에 하나 시켜 주었는데염?."
green : 장난기가 발동한다, 음! 자기는 안먹었다 이거지?
"그러면 당신은 안먹었어욤?"
greenbell : 당연하다는 듯이...
"응~ 나도 좀 먹긴 먹었지염. ㅋㅋ"
green : 빨리 내 놓으라는 듯...
"그럼 내 것도 좀 남겨 놨겠네욤?"
greenbell :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신은 밖에서 잘 먹쟎아염!"
green :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밖에서 잘 먹는다는 말이 좀 걸린다. 왜일까? 삐진듯한 말투로...
"한마디로 내껀 없다 이거지욤?"
greenbell : 어이없다는듯...
"남자가 그깟일로 쬰쬰하시긴~ 사실 당신, 밖에서 잘 먹쟎아염?"
green : 황당하다는듯...
"밖에서 잘 먹긴 뭘 잘 먹어욤? 오늘도 짜장면 먹었는데..."
greenbell : 한심하다는 듯...
"먹을 것만 챙기지 말고 당신의 배좀 봐염, 배는 남산 만 해가지고..."
green : 읔 인신공격성 말투지만, 이쯤되면 방법이 없다.
"캑! 항복~"
용케도(?) 집안에서 뭔가 먹은 흔적을 발견한 날은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는데 결국 나의 패배로 끝나곤 한다.
이그~ 아예 얘기를 꺼내지 말 것을...
이렇게 심심한 입 안의 궁금증도 모두 8년 전 담배를 끊고 생긴
후유증이라 생각해서 절친한 친구에게 나의 고백을 털어 놓았다.
내 얘기를 들은 그 친구 했던 말...
"흐흐흐~ 괜히 서운하고... 그렇지?
그게 다 이제 논눼가 다 되었다는 증거야."
그리고 또 한 마디...
"논눼들은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잘 삐진단 말야,
이제 너도 늙어간다는 얘기지...ㅎㅎㅎ"
무언가 자꾸 먹고싶어지는 것은 오래 전 담배 끊고 난 후 부터 생긴,
더 좋아진 먹성 때문이 아니라 나이 들어감에 따라 느껴지는
괜한 '허무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누구나 50대가 넘어서면 이유없는 반항 식의 서운함과 섭섭함도
함께 생기기 시작한다나?
문득 과거에 비해 잦아진듯한 아내, 아이들과의 말다툼을 의식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좁아진 것 같은 내 속을 친구에게 훤히 보인 것 같기도 하고...
"나이들어 가면서 덤으로 생기는 섭섭함과 서운함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사소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싸움으로 발전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며
그러니 "이 나이에 들어선 우리는 앞으로 좀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며 말을 맺었다.
'그렇구나,
나도 늙어 가는구나...'
이 사실을 어떻게 부인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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