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사(音樂萬思)/이야기가 있는 노래

귀에 익었던 이 노래, 우리 대통령...

green green 2010. 7. 29. 07:23

올해는 4.19혁명 50돌의 해이다.

이승만정권의 장기독재에 따른 부패의 만연과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마산에서 시작된 4.19혁명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애써 그 의미가 축소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4.19는 의거(擧)요, 그들이 주축이 되었던 5.16은 혁명(革命)으로 미화된 채 말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4월의 달력, 19일자 밑에 붙는 작은 활자는 '학생의거일'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그 후 혁명기념일로 바로 잡힌 것은 아주 잘 된일이다.
역사가 아무리 승자의 편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살아 있는 시대에 일어난 일이

그릇된 그들의 생각으로 잘못 기록된 현대사로 남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아주 어렸을 때의 희미한 기억이 한편 떠오른다.
정확지는 않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승만대통령의 정권 말기 즈음이였던 때

8순 생일을 즈음하여 전국적으로 불리어진 것 같다.
당시 학생이었던 내 위의 우리집 형제들은 이상한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노래의 내용이 가관이었다.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위해 여든평생 한결같이 몸바쳐오신 고마우신 리대통령 우리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오-늘은 리대통령 탄생하신날 꽃-피고 새노래하는 좋은시절 우리들의 리대통령 만수무강을 온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 우리들은 리대통령 뜻을받들어 자유평화 올때까지 멸공전선에 몸과맘을 다바치어 용진할것을 다시한번 굳 세게 맹세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료를 찾아보니 제목은 '우리 대통령'

작곡 연도는 미상으로 나오며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

이 글 올린 후 댓글 단 어느 분의 조언에 의하면 작곡 연도는 1955년,

공보실 제작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노래는 한 마디로 이승만 대통령 찬가이며

당시 문교부를 통해 초중고등학생들 대상으로 이 노래를 학교에서 가르치게 했다.

대통령 찬가이기 때문에 위의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으로 혼돈하여

기록, 기억하는 이유이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우상화와 독재정치가

북한의 정권보다 낳을 것 하나 없었던 1950년대 자유당 시절이었다.

 

우상화와 독재가 저 정도이니 항시 깨어있던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급기야 50년 전 4월19일 전후로 전국적인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이 일어난지 몇일 후 이승만대통령은 대통력직에서 하야,

하와이 망명길로 접어든다.

 

망명 5년 후...

젊은 시절엔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했으나

말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랑했던 고국에서 쫒겨나 해외에서 또 다시

망명생활 해야 했던 이승만대통령은 망명지 화와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과거 그 분이 젊었을 때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은

도산 안창호선생과 더불어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시민혁명으로 망명의 오명을 기록한 대통령이었지만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또 우리나라의 초대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분명히 있다.

 

오랜 기간의 독재와 그에 따른 부패의 만연...

부정선거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결국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에 의해 쫓겨난 그는 업적은 이제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이승만대통령의 권력욕, 자업자득이었다.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까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물러났다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박정희대통령 역시 장기집권하지 않고

때를 알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면 이 역사가 달라졌을까!

역사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