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클리오 패키지디자인 부문의 대상을 안겨준 디자인...
한눈으로보는 1958년부터 1988년까지 아리랑 담배 디자인의 역사
때는 1987년,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 째 열리는 1988년의 서울 올림픽 홍보를 위해
정부는 안팎으로 바쁘게 뛰고 있었다.
아직 군사독재정치의 여운이 남아있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통해 민주화 된
우리나라의 모습과 발전상을 세계 만방에 알릴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더구나 그 이전, 모스크바와 로스앤젤레스의 반쪽 올림픽을 딛고 반쪽으로 나뉘었던 세계가
다시 화합하여 올림픽을 통해 하나 됨을 알리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올림픽 개막을
1년여를 남긴 시점에서 정부는 가능한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두번 째 직장이자 봉급생활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대홍기획은 1987년 연초부터 바빴다.
올림픽 행사의 국제적인 홍보를 위해 효과적인 수단과 방법을 찾아 고심하는 관계부처에 당시
국제적으로 전무후무한 전매공사의 획기적인 案을 비밀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
그 내용은 전매공사에서 생산되는 한국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기존의 아리랑 담배에
88올림픽의 광고를 실어 전세계에 퍼져있는 우리나라의 주요공관을 통해 홍보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전매공사는 전국의 유수한 광고대행사에 공문을 발송하여 공개프리젠테이션을 통한
광고대행사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했다.
J프로젝트의 세부지침은 IOC(세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정한 그들의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제작해야 한다는 공문상에의 주의사항 외에 전매공사는 더 이상의 설명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아직 관공서나 정부투자기관에서는 수의계약이 횡행하였고 특히 디자인이나 광고의 공개프리젠테이션이 익숙하지 않은 풍토에서 전매공사에서 받은 공문은 파격적이었다.
더구나 전매공사에도 디자인실과 현직의 우수한 디자이너들이 꽤 있는 상황에서의 공개프리젠테이션은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크리에이티브에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공문을 접수한 D기획은 본인이 팀장으로 있는 우리 팀에 이에 대한 프로젝트를 전격 의뢰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프로젝트의 명칭은 J프로젝트...
곧 J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졌고 팀의 스탭으로 아트디렉터인 나를 포함한 4명의 디자이너와
1명의 카피라이터가 선발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자료실로 도서관으로 KOC(한국올림픽조직위원회)로 전매공사가 있는
충남 대전 근처의 신탄진으로 분주히 쏘다니며 왜?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매공사에서 우리에게 더 이상의 코멘트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풀이와 그 해답을 찾아
동분서주하기 시작한 지 사나흘 만에 그 해답이 나왔다.
그 내용은 IOC와 계약하지 않은 세계의 어떤 단체나 개인도 광고를 위해 올림픽의 휘장과 앰블럼,
나아가서 올림픽이란 단어조차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아! 이것이 문제였구나!
올림픽을 홍보해야 하는데 올림픽이란 단어와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쓸 수 없으므로 전매공사의
디자인실로서도 뚜렷한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광고대행사의 맨파워, 우리가 누구인가?
영하 30~40도의 남극이나 북극에서도 냉장고가 잘 팔릴 수 있도록,
맨발로 다니던 아프리카의 토인들에게도 신발을 사 신길 수 있도록... 팔지 못할 물건이 없도록
광고를 만들어 지원하는 특수부대의 훌륭한 전문요원 아닌가?
그러나 특수부대의 전문요원들도 이번 문제는 풀기 어려워 보였다.
올림픽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광고에 올림픽과 관련된 제반 요소를 사용할 수 없으니...
더구나 올림픽이란 단어조차 쓸 수 없는 혹독한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IOC 에서 정한 이번 올림픽의 앰블럼이나 휘장, 로고 대신 획기적인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을 찾지 못하거나 개발되지 않는 한 J프로젝트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 햇다.
사나흘에 이르는 조사기간동안 수집된 자료와 결과를 놓고 J프로젝트팀은 장고의 회의에 들어갔다. 난상으로 벌어진 회의는 하루를 넘겨 이튿날로 이어지며 시간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확정안은 한 가지이겠지만 그 하나를 위해 다섯 개의 시안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차 떼고 포 뗀 후의 장기판처럼 단 한 개의 그럴듯한 스케치를 내기 힘들었다.
몇날 몇일의 야근으로 정신이 혼미할 무렵
올림픽 칼라와 자료실에서 찾아본 우리나라의 민속 색동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올림픽 칼라는 오대주를 표현한 청, 황, 녹, 흑, 홍의 다섯 개 색상인데 반해 색동의 칼라는
청, 황, 녹, 백, 홍의 다섯 개 색상으로 단 한가지만 틀리고 올림픽칼라나 색동의 칼라나
나머지 색상은 같은 색인 것이 나의 눈에 들어온 것.
두 상징색의 서로 틀리는 한가지 색상은 올림픽에서의 흑색과 색동에서의 백색이니 이는 무채색이므로 바뀌어도 사람들이 웬만해선 눈치채지 못하니 이 얼마나 큰 발견인가?
그 순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섯개 안의 스케치가 즉시 그려졌고 우리는 그 스케치대로 디자인을 결정, 제작에 들어갔다.
올림픽 이미지와 한국의 이미지를 함께 떠 올리거나 홍보하기에 충분한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나온 다섯개 시안의 아리랑담배...
제일기획, 동방기획 등 다른 광고대행사와의 경합에서 채택된 작품으로 원래 5가지 시안용으로 제작되었으나 당시 전매공사장이 5개 안을 모두 채택, 시리즈가 되었다.
당시 홍두표 전매공사장으로부터 시안 다섯개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우수한 디자인이니
시리즈로 만들자는 제의를 했고 그 재의는 배석임원들 만장일치로 즉석에서 통과되었다.
광고대행사 프리젠테이션상 잇을수고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3개사의 공개 프리젠테이션인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동방기획에 이어 두째의 발표순서였는데
전매공사장은 마지막으로 한군데 남아있는 제일기획의 프리젠테이션을 받기도 전에 안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불가능을 가능케 탈바꿈 시킨 J프로젝트의 비밀은 왜?에 대한 의문추구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헌 체계화된 자료수집과 분석이 있기에 가능했다.
당시 본인이 D기획 재직시 J프로젝트에 참여, 디자인한 이 작품은 그 해의 D기획 최우수 디자인제작물로 선정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88년, 세계적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광고상 '클리오'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는 양예를 안기도 하여 D기획으로는 그래픽부문에서 최초의 클리오상을 수상하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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