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낚시 이야기

왜 낚시를 하느냐 묻거든...

green green 2003. 2. 4. 16:02
설날과 추석 명절 때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교통사고로 좀 일찍 세상을 떠난
작은 형의 산소와 그 외 조상님들 산소에 성묘를 하려면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
명절이면 으례히 생기는 교통대란을 피해 추석과 설날의 아침이면 이렇게 우리형제는 새벽에 일어나
차례를 지내곤 일찌감치 아직 먼동크기 전, 성묘길에 오르곤 했다.
어김없이 일년에 두세 차례, 동생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4형제가 함께 타고 가던 성묘길은 큰 형님의
미국 이민 후 3형제의 행사로 바뀌고 말았다.
일년에 두세 번 있는 우리들의 행사는 부모님 모두 타계하신 후 자칫 멀어지기 쉬운 형제의 우애를
가깝게 이어주는 훌륭한 구실을 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듬해인 1980년부터 시작된 우리의 성묘는 청량리에서 구리, 남양주, 덕소를 지나
팔당을 거쳐 양수대교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엊그제였던 설날 새벽 차창이 하얗게 성에가 끼는 추위에도 감행되었던 성묘길이 팔당대교 근처에 이르러
꽁꽁 얼어붙은 한강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하자 5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형님과 주고받던 선문답이 생각났다.
추석즈음이면 항상 팔당댐을 지나기 전 댐 바로 밑에서 명절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텐트를 쳐 놓은
장박꾼을 볼 수가 있는데 큰형님은 그 모습을 보고 못마땅하다는듯 항상 한 마디 하셨다.
"저 사람은 조상도 없나? 오늘같은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고 웬 낚시야?"
그러시고는 또 한 마디...
"나는 낚시꾼들이 제일 얄밉더라..."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이쯤 되면 형님이 낚시꾼들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도 싶지만 이유 여하에 따라 적당히 변론해야 할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엥? 왜요?"
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물어보곤 했는데 그 때마다 형님은 똑 같은 대답을 하셨다.
"명절 때는 조상들께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해야 하는데 추석에도 저렇게 낚시나 하고 있는 낚시꾼들은
조상도 없는 것 아니냐?"
"그리고 낚시란 것 자체가 미끼 하나 달랑 바늘에 꿰어 던져놓고 하염없이 앉아 공짜만 바라고 있으니
얄미울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바늘에 미끼 달아놓고 꼼짝 안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형님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쳐졌던 모양이다.

형님의 눈에는 낚시꾼들은 다른 노력은 하나도 없이 공짜만 바라는 모습으로 비춰져
'낚시꾼은 공짜만 바란다.'라는 해괴한 이론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낚시꾼은 조상도 없다?
낚시꾼은 공짜만 바란다?
큰형님은 이렇게 우스개 소리로 우리에게 낚시를 폄하했지만 낚시를 이해 못하는 형님에게
나는 좀 심각한 모습으로 나름대로의 철학을 심어 그 질문의 답을 해 주었다.
두 동생은 낚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형님의 이러한 해괴한 이론에 답을 주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항상 나였다.
"아마 저 사람은 한강에서 잉어를 잡아 생활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저 사람의 조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갈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겠지요."
이러한 식으로...

그렇다, 어쩌면 장박꾼에게는 생존의 방법일 수 있는 낚시는 분명히 1차산업이다.
까마득한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아직 머리가 덜 깨었을 때 먹을거리를 위해 산하를 누볐을 것이다.
육지의 짐승은 어떻게 하여 잡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여 사냥하기 시작했고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 역시
누군가가 낚시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것이다.
먼저 육지의 짐승들을 미끼로 유인하는 법에서 낚시의 원리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대 유물에서 보는 것 처럼 짐승의 뼈를 깎아만든 낚시바늘이 고안되었을 것이고
그 낚시바늘을 매고 이어 쓸 더 튼튼한 낚시줄도 눈이 뜨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의 낚시가 탄생을 하였고 민족과 대상어종에 따라 지금의 몇가지 장르로 나뉘게 된 것 아닐까?
그러다 보니 생존의 방법으로서의 낚시가 현대에 이르러 여가를 즐기기 위한 레저로 탈바꿈 했고...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것은 낚시 자체가 생존의 수단이 되었든 여가를 즐기는 수단이 되었든
낚시는 공짜를 바라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한 마리의 물고기를 낚기 위해 그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은 필수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긴긴 여름밤을 모기에 뜯겨 가면서 어신을 기다리지 않는가?
우리 낚시인들은 물고기가 미끼 달린 바늘을 덥석 물어줄 바로 그 순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최적의 조건으로 맞춘다.
낚시가 발명 혹은 개발된 이후 지금까지 발전해 온 낚시도구가 그렇고
물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 역시 낚시대상의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연구, 개발되어 온 것처럼...

최초 낚시를 개발한 선조들은 먹기 위한 낚시를 했지만
현대의 낚시꾼, 즉 조사들은 그 낚시행위를 목적하는 바에 따라 물고기를 모으고 낚시를 하는
레져로서의 취미로 발전했을 뿐 낚시는 결코 공짜를 바라는 취미가 아닌 것이다.
올 추석에도 팔당댐을 지나는 새벽의 성묘 길에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의 그 장박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옛날 큰형님과의 선문답을 회상하며 낚시에 대한 생각을 또 한번 정리,
떠 올릴 것이다.
팔당호 무너미 아래포인트의 그 낚시꾼은 정말 한강에서 잉어를 잡아 생활하는 어부일까?
아직도 그는 정말 돌아갈 가정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