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낯모르는 사람들, 다투어 버스요금 대신 내주다...

green green 2009. 7. 20. 16:25

7년전 초겨울의 어느날,

출근을 위해 종종걸음으로 버스정류장에 막 도착하려는 순간,
이제 막 타야 할 63-1번 버스는 손님을 태우고 떠나려 하고 있었다.

순간,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던 내 몸은 비호와도 같이 버스를 향해 달렸고
그 사이 버스를 향해 손짓하며 무지막지한 포스로 달려 오는 누군가를 발견한

기사 아저씨는 급히 버스를 세웠다.

 

그 때의 시내버스 요금이 600원, 지갑을 꺼내 1,000원권 지폐를 꺼내는데

아뿔싸, 그날따라 1,000원권 지폐가 단 한장도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

이런! 평소 버스요금을 위해 동전 대 여섯개 이상은 꼭 가지고 다녔는데
그날 따라 동전은 커녕 1,000원 짜리도 씨가 말라 있었으니...

10,000원 지폐를 들고 사정얘기를 했으나 기사 아저씨는 못들은듯 냉담했다.
운행중인 버스 운전기사 붙들고

'혹시 1,000원권 지폐 10장 갖고 계시면 바꿔 달라' 했으니 야단맞지 않은 것이 다행. 

 

어떻게든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10,000원권 지폐를 들고

승객들을 향해 뒤 돌아서 마치 외판원이나 된 것 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승객 여러분, 제 불찰로 잔돈이 없어 버스요금을 못내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 10,000원짜리 바꿔주실 분 있으십니까?"

워낙 큰 목소리는 버스 안 구석구석 충분히 전달되고 남음이 있었다.

 

중간 창가에 앉아 계시던 70세 정도 연세의 할머니가 주섬주섬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나를 향해 흔들었다.
할머니께 다가가 바꿔 주시겠느냐고 물었더니 "바꿀 돈은 없고 그냥 이것
갖다 내고 거스름 동전을 내게 줘요." 하는 것 아닌가?
이미 출발한 버스에서 쫓겨날지언정 할머니의 꼬깃한 쌈짓돈 마저 축낼 수 없다는
마음에 일단 고마움을 전하며 그 돈은 받지는 않고 사양했다.

그 사이 이곳저곳에서 두어명의 승객들이 대신 내 주겠다고 동전이나

1,000원짜리를 들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나를 툭툭 치는 느낌에 뒤돌아 보았더니 20대 후반의 곱게 생긴
아가씨가 빙그레 웃으며 "아저씨 제가 내 드릴께요." 하더니 카드를 꺼내
이미 버스요금 인식기에 대고 긋는 것 아닌가?

그리고 보답의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그 아가씨는 정류장에서 내리고 말았다.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우리들  사는 이 세상은 아직 각박하지도, 메마르지도 않았구나'
생각하면 600원 푼돈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 돕느라 버스 안의 승객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는 그 모습...

정서가 메말라가는 이 시대, 뭉클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를 대신하여  버스요금을 내어 주려 했던 할머니의 꼬깃꼬깃한 1,000원 짜리 지폐,

그 지폐는 그 어느 부자의 돈보다 귀해 보였다.

또 다른 50대 후덕한 아주머니의 지갑에서 나온 1,000원 짜리 지폐,

그 지폐는 어느 자선서업가의 돈보다 깨끗해 보였다.
뒷 좌석에 앉은 30대 어느 젊은 남자가 전해주려했던 100원짜리 동전 여섯개,

어느 황금보화보다 더 빛났다.

600원이지만 서로 내 주겠다는 승객들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빠른 솜씨로

카드를 긋고 도망치듯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어느 이름 모를 아름다운 아가씨...

 

남의 아픔을 함께 하는 용기가 있는 이들의 보살핌과 배려가  있기에

이 사회는 마직 희망이 있다, 있고말고...

그날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주려 했던 할머니를 포함한 승객들과
63-1번 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든 승객분들,
그리고 이 땅위의 모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한 마음 전한다.

 

"인하여 감동입니다,

더불어 행복합니다.

모두 아름다운 분들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