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가족 이야기

미궁, 풀리지 않은 50여년 전의 누명...

green green 2009. 7. 31. 11:06

초등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 해였던 1960년 가을,
당시 살던 집을 개축하느라 바로 아래의 남동생과 여동생 나까지 3명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큰댁에 맡겨졌다.
당시 우리는 할머니댁으로 불렀던 큰댁에서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이듬해까지 5개월여 지냈는데 그 기간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을 경험했다.

 

닭장의 달걀을 수거하시던 할머니는 닭장에서 나오시며 몹시 화를 내셨다.
매일 같은 시각, 둥우리 안에 있을 수거해야 할 달걀이 없어졌으니
누가 슬쩍 한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신 할머니는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조카들과 우리 삼남매를 추궁하셨다.

할머니의 역정이라곤 경험하지 못한
나와 나이 한 살 차이나는 당시의 어린 여동생은 겁이 덜컥 났다.

 

오른 손에 회초리를 쥔 할머니의 시퍼런 서슬에 여동생은 얼떨결에
자기의 오빠인 나를 범인이라 지목하고 말았다.

웬 날벼락?
할머니의 회초리는 무고한 나를 향했고 종아리는 순식간에 피멍이 들었다.
매를 맞으면서 울며불며 '나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하자
할머니의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가다시 여동생을 취조하기에 이르렀다.

 

"네 오빠는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오빠가 계란을 먹고 껍데기는 어디에 버렸느냐?"라고 할머니가 물었다.

이에 동생은 "한강에 버렸어요" 라며 손가락으로 동네의 개천 방향을 가리켰다.
증인 동생과 피의자인 나를 앞세우고 할머니는 동네 개천가에서
현장검증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먹은 사실이 없는 달걀 껍데기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범인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그 때 그 사건은 지금껏 미궁에 빠졌다.

세상에 밝혀지지 않을 누명은 없다. 누명의 해악은 무섭다.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미궁의 사건,
요즘 여동생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를 왜 무고했는지 물었더니

어렸을 적의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라고 변명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됐던 나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되었다.

 

세상 살면서 남을 무고할 때가 있지는 않는지?
소문으로 도는, 확인되지 않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3자에게
아무 생각없이 전하지는 않는지?
그 과정에서 더 부풀리지는 않는지?

 

참고로 무고[誣告]는 법률용어로써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