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조차 중학교 입학을 위해 시험지옥 속에서 지냈다.
가정교사, 과외공부, 그룹지도...
이러한 말이 생긴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이른바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초등학교 때 한 반의 학생수가 80명 넘는 콩나물교실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중학교 입시를 거쳐 입학했다.
왼쪽의 사진은 전농중학교(1회 졸업) 3학년 때의 사진.
1970년대 초반,
그 때는 고등학교도 실업계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른바 상업고등학교와 공업고등학교...
그 때의 부모들의 희망사항은 대학 못갈 바에야
상고 나와서 은행원 되는 것.
사실 당시 은행원들은 모두 상고출신이었는데 다른 직종에 비해
대우가 훨씬 좋았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공업입국의 의지 아래 공업고등학교가
많이 생겨났고 학생들을 배출해 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는 H공고 건축과와 토목과를 지망했으나
입학성적에 밀려 3지망이었던 공예과로 입학 하게 되었다.
수학을 유난히 못햇던 나는 건축과나 토목과에 합격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었다.
오른 쪽 시진은 H공고 2학년 때의 모습...
깨끗하고 준수했던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순수했었다.
높은 돗수의 렌즈, 굵은 뿔테의 안경이 어떻게 보면 공부벌레인 것 같아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열등생도 아니었다.
공예과에서의 수업은 훗날 바라던 H대학교 그래픽디자인과 지망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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