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넘었군요.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오후,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삼일고가도로 위에서의 일입니다.
충무로에서 일을 마친 후 사무실에 들어 가기전 명동에서 볼 일이나 보려고
백병원을 지나 육교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의 웬만한 육교가 당시 그랬듯이
그 육교에도 어김없이 몇 군데의 노점과 걸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구경거리... 누군가 구역다툼을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남자 걸인과 젖먹이 딸까지 딸린 30대 중반의 여자걸인이었습니다.
원래 그 육교구역은 먼저 남자걸인이 주인이었는데 갑자기 모녀걸인이
나타나자 자신의 위치에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청년(?)걸인은 욕지거리를 해대며 이렇다 할 저항하지 못하는
모녀걸인의 머리채를 끌어당기며 폭력을 휘두르는 등
싸움이라고 할 수 없는 일방적인 폭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30대의 여자걸인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젖먹이를 꼭 끌어안은채
감히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있었는데 아마 모녀걸인은
걸인생활을 한지 몇일 되지 않은 신참인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필시 모녀걸인의 몸 어딘가
성하지 않게 될 것 같아 불안할 즈음, 육교를 건너다 구경하던 행인들이
모여들어 모녀걸인을 보호하며 두둔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놈이 말짱한 육신 가지고 무엇 할 것이 없어 비럭질이냐?"고...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까지 딸린 여자걸인을 도와주진 못할 망정
왜 행패를 부리느냐"고...
그리고 "이 자리가 네가 전세 낸 자리냐?"고...
폭력을 행사하던 젊은 남자걸인은 행인들에게 뭇꾸지람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꾸지람하는 동안 어느 행인은 흐느끼는 모녀걸인에게 지갑을 열어 동전이 아닌
시퍼런 지폐로 적선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호되게 꾸지람 듣던 청년걸인은 행인들의 꾸지람이 무서워서였는지
아니면 제 자신이 부끄러웠던지 이내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후 그 육교의 자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모녀걸인이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아직까지는 아니 앞으로도 옳은 사람들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등 많은 생각이 오갔던 가슴 뭉클한 오후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육교 위에서
젊은 걸인의 폭력에 아무 저항 못하던 그 모녀 걸인,
지금은 어떻게 살까?
그때를 회고하며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한 그들의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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