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세상 이야기

피맛골 엘리지...

green green 2010. 6. 7. 13:01
2003년 늦가을, 
대학동창 너댓명이 사라져가는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다녀온 후 당시 활동했던
낚시사랑 동호회 카페에 올린 기행을 읽고 그곳에서 한번 번개모임을 갖자는 요청이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그로부터 몇칠 후 피맛골을 다시 찾았다.

그 때의 정황으로 교보문고 바로 뒷편의 첫번째 블록은 아직 재개발 되지 않는단다.
재개발의 대상은 당시로 돌아가 수년 전, 현대그릅에서 매입했다는 청진동해장국집
들어서는 입구부터 구 신신백화점 쪽 방향의 피맛길이 재개발 된다는 것.
향후에도 그대로 존속된다는 첫번째 블록의 뒷골목 어느 술집에 우리는 모였다.

피맛골은 느끼는 관점에 따라 원래 종로통과 평행으로 위치한 뒷편 골목보다
그 골목을 기점으로 주택쪽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좁다란 골목이 더 재미있다.
옛날엔 민가였을 어엿한 주택을 개조, 술집과 밥집 등으로 꾸몄다.
그렇게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 내려왔으리라...

카페의 강남지부 회원 김대감 선배, 쏭포선배, 붕사, 조제비, 영우리후배와 green...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추장 바른 돼지고기, 쇠고기...
뚝배기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공짜 선지술국... 그래, 이 맛이야~
거기에 알싸한 소주 한잔, 크읔~ 좋다!

뱃속 전체가 고소한 알로 꽉채워져 버릴 것 하나 없는 시샤모구이...
일본 홋카이도 남동부에서 서식한다는 바다빙어과의 조그만 생선,
시샤모는 잘 구워서 머리부터 꼬리, 뼈까지 다 씹어먹을 수 있도록 조리되어 있었다.
바삭바삭 씹히면서 부드러운 속살은 아주 맛있았는데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거기에 노랗고 탐스럽게 잘 구워진 은행꼬치구이...
쫀득쫀득 씹히는 맛과 살 속에서 흘러 나오는 국물 맛이 그만인 조갯살구이...
싱싱한 생굴과 함께 끓여 그 맛이 더욱 진했던 순두부탕...
거기에 따끈한 정종대포 한잔, 역시 좋고!

덜걱거리는 유리창의 닳아빠진 미닫이 문과 그 옆의 시멘트 외벽 뚫어 만든 50~60년대 식의
작은 쇼윈도, 그 속에는 얼음덩이 위에 싱싱한듯 보이는 생안주꺼리가 구미를 돋우고 있다.
미닫이문 열고 들어가면 드럼통으로 만든 술상 서너개 보이는 이름하여 속칭 '작부집'...
삐꺽거리는 좁은 나무계단 통해 올라가는 그 집의 2층은 특별한 손님 받는 VIP룸인가?

한때 손님들 애간장깨나 태웠고도 남았을, 이제는  한물 가고도 남은 주모와
역시 한물 넘어 두물 갓을 또 다른 작부들과 눈맞추며 마주 앉았다.
시도때도 없던 술꾼들과 작부의 젓가락 장단 세례에 모서리 흉하게 낡은 상,
그 위에 또 한 상 차려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고래고래 노래도 불렀다...

앉은 자리 돌아가는 순번대로 한곡씩 뽑던 노래,
그래도 얼굴 제일 반듯한 막내가 부르던 노래 '동숙의 노래'에는 그녀들만의 애절함과
속 모를 사연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넘쳐서 사무친 미움...'

'잘 가시라'며 '또 오시라'고 손 흔들며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던 그녀들의 '작부집'을 나와
골목 둘레둘레 두리번 거리며 찾아 들어간 생맥주집에서 마신 생맥주...
수천cc 마시다 보니 11시 조금 넘은 시각,
앉을 자리 없이 꽉 채운 그 많던 손님들은약속이나 한듯 어느새 모두 나갔다.

마시고 두드리고 또 마셔도 모자랐던가? 아니면 시간이 남았던가?
12시 훨씬 넘은 시각, 끝까지 만아 이젠 집에 가야겠고 자리를 일어선
강남의 세 사내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앉은 곳이 또 다른 생맥주집...
피맛골 향수에 취하고 술에 취한 세명의 사나이는 그곳에서 새 날을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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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2003년 상황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그외 피맛골의 자세한 정보는 재작년 7월 29일, 이곳에 올린 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피맛골...'을
참고하시길...